[TV에 밑줄 긋는 여자] (2) 뭐든 해주고 싶은 사람, 오늘, 그녀가 보고 싶다.

 

 

“저 진짜 죽을 거 같아요.”

“미안해요. 뭐든 어떻게든 해주고 싶은데…”

“그냥 잠깐만 거기 있어 줄래요.”

 

JTBC 월·화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의 대사 중 한 대목이다.

극중 이성 간 대화로 서로에 대한 호감과 끌림에서 시작된 대사인데, 나에게도 ‘뭐든 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특별히 나에게 잘해 준 것도 없고, 오히려 때로는 섭섭하게 하기도 했지만 그냥 난 그녀가 좋았다. 동갑이고, 아이를 키우고, 책을 좋아하고, 무엇보다 글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그녀에게 괜스레 끌렸다.

그래서일까, 난 그녀를 보고 난 뒤 왠지 잘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와 나의 스케줄은 자주 어긋났고, 힘들게 만든 약속도 깨지기 일쑤였다. ‘나이 들어서 만난 친구는 여기까지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 한구석에 서운한 마음도 있었다.

자주 보지 않으니 당연히 연락은 뜸했고, 점점 멀어지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늦은 밤 ‘맥주 한잔이 먹고 싶다’며 ‘집 앞으로 가도 되느냐’고 묻는 그녀의 문자가 왔다. 반가웠다. 한참을 못 봤던지라 궁금하기도 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못내 가슴 졸였지만 티 내지 않고 그녀를 기다렸다. 택시를 타고, 슬리퍼에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그녀가 날 찾아왔다.

몇가지 해결되지 않는 고민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던 모양이다. 더운 여름밤 시원한 맥주와 값싼 안주를 사이에 두고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그날 그녀에게 특별히 내가 해 준 말은 없다. 그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주었을 뿐이다. 한참을 이야기하던 그녀는 적당히 빨개진 얼굴로 집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택시 안에서 그녀가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잠깐이었지만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참 고마웠어.”

뭐든 해주고 싶은 사람, 오늘, 그녀가 보고 싶다.

 

이윤영 방송작가 blog.naver.com/rosa0509, bruch.co.kr/@rosa0509

사진=JTBC ‘미스 함무라비’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