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재활용 쓰레기 대란 그후

고백하자면 기자는 ‘기혼 여성’이되 ‘주부’는 아니다. 직장을 핑계로 살림은 뒷전이다. 남편, 시어머니, 가사도우미 여사님의 손길이 없다면 집 꼴은 처참할 것이다. 쓰레기 분리수거라고 다르지 않다. 우리 집 자체 시스템(?)에 따라 일반 쓰레기와 종이, 그 외 것들로 구분해 놓는 정도다. 분리수거 대상이든 아니든 그냥 대충대충이었다.

그러다 지난 4월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일어났다. 중국이 폐자원 수입을 중단하면서 자원재활용 업체들이 비닐, 스티로폼은 수거하지 않겠다고 나선 것이다. 여파는 플라스틱까지 미쳤다. 아파트단지마다 큰 혼란을 겪었다. 재활용을 분리해 내놓을 수도 없고, 과태료를 무니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릴 수도 없는 상황에 처했다. 환경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지고 수거하고, 재활용 관리지침을 배포하는 등 긴급조치를 취하면서 소동은 점점 가라앉았다.

이진경 경제부 차장
3달여가 지난 지금, 4월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가져온 파장은 작지 않은 듯하다. 작은 변화들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다.

기자부터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올바른 분류를 위해 아파트 게시판에 게시된 분리배출 안내문도 스마트폰에 찍어 저장해 뒀다.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려야 하는지, 분리수거 대상인지, 분리수거를 하려면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는지를 한 번 더 생각하고 버린다. 비닐, 스티로폼은 깨끗한 것만 분리해 버리고, 더러운 것은 종량제 봉투 행이다. 배달음식을 시켜먹은 후 비닐은 떼어내고, 플라스틱 용기는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하듯 깨끗이 닦아낸 뒤 버린다. 우유팩도 헹군 뒤 납작하게 접어 내놓고 있다.

아직 부족한 점투성이긴 하다. 정석대로라면 페트병에서 라벨을 제거하고 뚜껑을 분리해 버려야 한다지만 그냥 버리는 일이 많다. 해보면 알겠지만 라벨은 정말 쉽게 안 떼어진다. 잘 모르는 것도 많다. 컵라면 용기는 누구는 깨끗이 씻으면 재활용할 수 있다고 하고, 누구는 헹궈도 재활용이 안 된다고 해 그냥 일반 쓰레기로 분류하고 있다. 영수증은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한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았다.

조금씩 변하는 것은 기자뿐이 아닌 것 같다. 살고 있는 아파트 쓰레기장의 분리수거 품목은 세분화됐다. 이전에는 ‘종이’만 있었는데 최근 종이, 책, 신문, 우유팩을 구분하도록 했다. 사회에서는 플라스틱 등 1회용품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모습이다. 비닐봉지 대신 종이봉투를 쓰고, 종이컵은 인쇄를 최소화하려 한다. 커피전문점에서는 플라스틱 컵 대신 머그컵이나 텀블러 사용을 권하고, 플라스틱 빨대는 점차 없애겠다는 계획을 속속 밝히고 있다.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는 일, 개인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는 일 등은 귀찮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환경을 위해서’라는 거창한 사명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소극적으로나마 기여하고자 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정도다. ‘나’부터 변하면 세상의 모든 ‘나’가 모여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싱크대에서 플라스틱 용기를 닦고 있는 걸 보고 시어머니가 한마디 하신다. “진작 이렇게 했어야 하는 일인데.” 귀찮음을 하나씩 더 감당해 보려 한다.

이진경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