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폭염 경보

1970년대 말 서울의 여름밤 풍경은 이채로웠다. 주민들이 무더위를 피해 이불을 끌고 나와 골목 평상에서 잠을 자곤 했다. 늦잠을 잤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었다. 새벽 등굣길 학생들에게 속옷을 들키는 창피를 감수해야 했다.

이제는 골목에서 잠자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가 됐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고층빌딩이 만들어내는 도시 열섬현상으로 골목은 생지옥이나 다름없다. 지구온난화가 피해 지역을 확대해 가면서 발붙일 곳이 줄어든 것이다. 빙하가 녹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1995년 7월 미국 시카고의 최고 온도가 섭씨 40도에 달했다. 보름 동안 465명이 고온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94년에만 폭염으로 인해 33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0년 불가리아에서는 열풍으로 인해 산불이 번지면서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같은 해 터키에서는 고온으로 인해 철로가 뒤틀리면서 열차 탈선사고가 발생했다. 이달 들어 일본에서 38도가 넘는 폭염이 이어지면서 사망자가 수십명에 달하고 있다.

올여름은 지구가 ‘열돔’에 갇히는 세계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다. 지구 상층부 제트기류가 극지방의 찬공기가 남하하는 것을 막고 있어 어딜 가나 뜨거운 기온에 시달려야 한다. 한국이 유난히 무덥게 느껴지는 이유는 티베트발 고온 공기에다 중국 동부 방향으로 이동 중인 태풍 ‘암필’이 몰고 온 구름대가 한반도로 유입되면서 낮 동안 데워진 공기가 밤사이에 방출되지 못하고 정체돼 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일부 섬 지역을 제외하고 전국에 폭염경보가 발령됐다. 물고기조차 열기에 견디지 못해 떠오르고 있다. 여름 휴양지로 유명한 속초는 소방대가 출동해 ‘인공비’를 뿌리고 있다. 탈원전을 밀어붙이던 정부가 원전을 풀가동해 전력수급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에어컨이 없는 서울 삼양동의 한 옥탑방으로 거처를 옮기고 현장에서 대책안을 만들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대통령도 하늘 탓만 할 수 없었던지 뒤늦게 나섰다. 예나 지금이나 피해가 커지면 여론이 동요하고 ‘임금님’ 탓하는 게 민심이다. 폭염이 정부의 위기관리능력 시험대가 됐다.

한용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