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에게도 박해받은 야지디족 난민의 절규…“이라크에 안전한 곳은 없어요”

“무슬림 친구들이 나를 박해했을 때 배신감을 느꼈어요.”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영국에 머물고 있는 이라크 북부 신자르의 소수민족인 야지디족의 마즈호르 압둘라 하기(30·사진)는 지난 2014년 8월3일 일어난 비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공부를 잘해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한 그는 ‘그 비극의 날’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자신이 속한 야지디족을 무차별 학살한 이후 꿈을 접어야만 했다. 그는 “IS가 공격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수백명의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죽었습니다. 내 친척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IS 공격으로 죽고 납치당했어요”라고 말했다. 가까스로 학살을 피한 그는 부족 사람들과 음식 없이 10시간을 걸어 인근 신자르산으로 도망친 뒤에야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 사건 이후 그를 힘들게 한 건 친척과 이웃의 죽음에 그치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만 해도 따뜻했던 이슬람 친구들과 이웃들이 그를 따가운 시선으로 보기 시작한 때문이었다. 마즈호르는 “IS 학살 이후 우리를 보는 무슬림 이웃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정말 견디기 힘든 상황이 이어졌다”며 “당신의 친구들과 이웃들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살 수 있겠나. 누구도 살 수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미국 CNN방송은 야지디족 마즈호르 등 야지디족이 이라크내 무슬림으로부터 박해를 받는 소수민족임에도 영국 내에서 다른 무슬림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영국 정부는 ‘마즈호르가 이라크에서 안전이 보장된다’며 그의 최초 난민 신청을 반려했고, 마즈호르는 이에 반발해 재심을 신청,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야지디족은 야즈단이란 유일신을 믿는 소수민족으로 이슬람보다 먼저 생겨났지만 대다수 무슬림은 이들이 사탄을 숭배한다며 이단 취급하고 있다. 특히 IS는 2014년 8월3일 야지디족을 공격해 학살을 감행했는데, 유엔 등 국제사회는 이를 인종청소(제노사이드)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이 과정에서 수천명에 달하는 야지디족 여성들과 아이들은 노예 신세가 돼 IS에 끌려갔다.

마즈호르가 이라크 고향을 떠나 영국에 도착하기까지 거친 여정은 그가 IS 외에 무슬림 출신 난민들로부터도 박해를 받은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인종청소에 해당한다는 국제사회의 결정에도 사건이 발생한 뒤 야지디족을 품어주는 국가들은 없었다고 마즈호르는 기억했다. 목숨을 부지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그는 2016년 유럽에 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난민이 늘어나고 IS발 테러가 잇따르자 유럽에선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논의가 맞물려 반난민 정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결국 동유럽, 지중해 루트를 포기한 그는 프랑스 북부 칼레에 임시로 조성된 난민 캠프를 선택했다. 같은 처지에 있는 난민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지만 그를 향한 무슬림들의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마즈호르는 “쿠르드족 사람들은 우리(야지디족)가 모스크에서 기도를 드리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자 우리를 납치해 무차별적으로 구타했다”며 “그들은 우리를 가둬놓고, ‘다시 와서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했다”고 말했다.

하늘이 그를 도운 걸까. 그날 밤 난민 캠프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그는 구사일생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마즈호르는 이후 스코틀랜드의 활동가를 만나 인근 덩케르크 난민 캠프로 이동할 수 있었고, 결국 영국해협을 거쳐 영국에 도착하게 됐다.

종교도 다르고 이라크 내 위상도 다르지만 영국 정부는 그를 포함한 야지디족을 무슬림과 구별하지 않았다고 마즈호르는 말했다. 그는 “영국 내무부는 우리가 얼마나 이라크에서 위험한 상황인지 모르고 있어요”라며 “이라크가 안전해졌다고 말하지만 야지디족을 위한 안전지대는 없어요”라고 말했다. 마즈호르는 국제사회가 자신의 고향인 신자르의 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한다면 언제든 돌아가고 싶다면서도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이런 야지디족의 특별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16년 4월 영국 의원들이 ‘야지디족을 위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정부에 보냈지만 현재까지 특별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CNN방송은 설명했다. 앤 노로나 인권활동가는 “야지디족이 이라크에 돌아갈 경우 처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다른 난민 신청자들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즈호르는 CNN에 “야지디족은 다른 사람들을 공격한 적이 없다”며 “우리에게 이런 운명은 너무 가혹하다”고 말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사진=CNN방송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