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07-26 23:23:44
기사수정 2018-07-26 23:23:42
“예술의전당엔 일주일에 한 번씩 가보고 그러질 못해요. 우리 집에서 너무 멀거든요. 그쪽에 살면 퇴근 후에 한 번 갈 텐데. 예술의전당을 왜 그리 멀리 지었나. 한강변에 지었으면 강북·강남에서 접근하기 좋았을 텐데요. 국립현대미술관 본관도 과천에 있는데, 큰 실패작입니다. 그 먼 데를 사람들이 어떻게 가나요. 시내에 있어야 잠깐 들를 수 있는데. 근무시간이 많이 줄어 든 만큼 여유 시간에 미술관·음악당에 갈 수 있어야 하는데….”
김영호 일신방직 회장이 지난 4월 한국메세나협회 신임회장 취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손수 운전할 일 없는 기업 회장조차 예술의전당이 멀다고 느낀 점이 인상 깊었다.
‘뚜벅이’ 공연 담당 기자들로서는 오죽할까. 하루의 피곤이 잔뜩 쌓였을 때쯤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 역에 내리면 예술의전당이 유독 까마득해 보인다. 한창 밀릴 퇴근 시간, 걸어서 10분 거리인 예술의전당까지 택시를 탈지 마을버스를 기다릴지 잠시 갈등한다. 예술의전당 정문에 내려도 끝이 아니다. 무거운 다리를 끌고 콘서트홀까지 걷고 또 걷는다. 산 넘고 물 건넌 끝에 좌석을 찾아 앉는 순간, 공연을 보기도 전부터 피로가 몰려온다.
예술의전당뿐 아니라 국내 주요 국공립 공연장들은 유독 물리적·심리적 거리감이 느껴진다. 남산 중턱에 자리한 국립극장 역시 친근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건물 자체도 권위적이다. 서울이 거대 도시인 탓도 있지만,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고 공연장을 지은 이유가 크다. 예술의전당의 경우 1980년대 초 거론된 후보지는 종로구 옛 서울고등학교 자리와 서초동 대법원 부지였다. 예술의전당 설계자인 고 김석철 교수는 한강 둔치도 추천했다. ‘한강에 위치하면 가장 접근하기 쉽고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허허벌판이던 우면산 인근이 최종 부지로 낙점됐다. 게다가 남부터미널역까지 지하도로 연결하려던 당초 계획도 이행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김 교수는 ‘대중교통과 연계되지 않은 문화공간은 의미 없다. 지하철과 연결되는 지하로가 조성되지 않는 한 예술의전당은 미완성 작품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영국 런던의 로열 오페라하우스, 바비칸 센터, 프랑스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는 모두 시내 한복판에 있다. 애써 공연장을 찾지 않아도 주변을 지나다 ‘쓱’ 들러볼 수 있다. 거창한 진입로도 없다. 물론 수백년 전 세워졌거나 상대적으로 땅 크기가 작은 도시의 공연장을 우리와 일대일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젠 국내에도 산책하다 가볍게 들를 만한 이웃 같은 공연시설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2014년부터 서울시가 건립을 추진 중인 클래식 전용홀에 거는 기대가 크다. 클래식 전용홀 후보지로는 광화문 광장 근처 세종로 공원이 일순위로 꼽혀왔다. 현재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과 광화문 광장 재조성 계획이 확정되지 않아서 중앙투자심사가 잠시 보류된 상태다. 최종 결론이 어떻게 나든 강남에 치우친 공연시설의 균형 회복, 시민이 친근하게 느낄 만한 공간이라는 대원칙이 지켜졌으면 한다.
송은아 문화체육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