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기무사 개혁의 조건

국방부 모습 공무원 조직 변모/쓴소리 내뱉는 측근도 사라져/宋장관, 하극상으로 깊은 상처/고립무원 형국… 결단 내려야 지난달 5일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의 문건 공개로 촉발된 촛불 계엄 문건 파문이 벌써 한 달을 넘겼다. ‘촛불혁명의 완성으로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을 기치로 내건 문재인정부에서 국군기무사령부 계엄 문건은 그야말로 적폐다. 어떤 경위로 문건이 작성됐는지에 대한 진상조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도 마음 한 구석은 ‘기무사 개혁이 제대로 되기나 할까’라는 의문과 함께 빈대 잡는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동안 청와대와 국방부가 보인 아마추어적 행보 탓이다.

지난달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해외 순방 중 독립적인 수사단을 구성해 의혹을 규명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열흘 뒤인 20일에는 청와대가 기무사 문건의 첨부자료인 ‘계엄대비 계획 세부자료’를 추가 공개했다. 모두 이례적 조치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미덥지 못했기 때문으로 비쳐졌다. 물론 공개자료에 국회 무력화와 언론통제 계획까지 담긴 사실이 드러나면서 군의 쿠데타 음모설은 더욱 커졌다. 기무사 개혁 요구도 높아졌다.

박병진 외교안보부장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지난달 2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민병삼 국방부 100기무부대장의 폭로가 터져나오면서다.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공개석상에서 부하가 장관을 ‘들이받는’ 장면이 방송을 통해 중계되자 국민들은 ‘상명하복이 기본인 군이 어쩌다 저 지경에 이르렀느냐’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송 장관이 거짓말이라며 둘러대는 모습은 더욱 가관이었다. 믿었던 이석구 전 기무사령관까지 송 장관에게 등을 돌렸다. 문재인정부 첫 국방수장으로 국방개혁을 이끌던 송 장관은 계엄령 문건 파문에다 하극상까지 더해지면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듯했다. 계엄 문건 수사가 정쟁(政爭)으로 내몰리고, 지휘력의 한계를 보인 송 장관 경질설이 대두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여기서 또다시 반전이 이뤄졌다. 여름휴가에서 돌아온 문 대통령이 지난 3일 송 장관 대신 기무사령관을 전격 교체한 것이다. 일단 송 장관에게 힘을 실어준 모양새가 됐다. 대통령으로선 계엄 문건 수사에 대한 정당성과 명분을 갖고도 기무사 개혁을 추진하는 데 장관과 부하들의 손발이 맞지 않고 삐걱대는 모습이 마뜩잖았을 거다.

무릇 개혁은 피를 부른다. 기득권자들의 저항도 당연지사다. 그래서 과거 숱한 개혁이 좌절되고 중도 포기를 선언했다.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가거나 조직 내분 등이 원인이었다. 함량 미달 지휘관도 있었다. 참여정부 때도 군은 국방개혁을 둘러싸고 정권과 갈등을 빚었다. 이라크 파병, 전시작전통제권, 남북정상회담, 주한미군 철수, 서해 북방한계선 문제 등 뜨거운 외교·안보 현안도 많았다. 공교롭게 당시도 국방부 장관은 해군 출신으로 육군의 비호감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부하가 장관을 욕보이는 하극상은 없었다.

그 무렵 윤광웅 전 국방부 장관(예비역 중장·해사 20기)이 세운 ‘국방개혁 2020’은 한국 국방정책사에 빼놓을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 군의 문민통제 기틀 마련에 나섰던 그는 육사 출신 인사를 참모로 기용하기도 했다. 윤 전 장관과 손발을 맞췄던 인사로 안광찬 전 국방정책실장(예비역 육군 소장·육사 25기)을 떠올릴 수 있다. 군의 반발과 저항을 불러온 국방개혁 2020을 추진하기 위한 최일선 전투현장에 그가 있었다. 윤 전 장관과 그의 손을 거쳐 한·미동맹의 균열이 봉합되고 진보와 보수는 타협점을 찾기도 했다. 이후 안 전 정책실장은 이명박정부에서도 국가비상기획위원장을 맡아 진보와 보수를 넘나들었다.

송 장관 취임 이후 국방부 실·국장(5개)은 모두 민간인으로 대체됐다. 군이 장악하던 고위 간부직을 민간인들로 채운 뒤부터 국방부의 모습은 전형적인 공무원 조직으로 변모했다. 위기나 갈등 유발 상황을 관리하며 조직을 이끄는 컨트롤타워는 없었고, 장관에게 쓴소리를 내뱉는 측근도 사라졌다. 장관 본인이 자초한 것이기도 했다. 고립무원 형국이다.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언제까지 문 대통령이 송 장관 뒤를 봐줄지 궁금하다.

박병진 외교안보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