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원자탄과 과학자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자들 / 원자탄·수소폭탄 제조 불구 / 전쟁에 쓰여 세계평화 유린 / 사회적 책임 갖고 연구해야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렸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일본의 항복에는 두 발의 원자탄이 크게 기여했다. 6일에는 농축우라늄으로 제조된 원자탄인 ‘꼬마’(Little Boy)가 히로시마에, 9일에는 플루토늄 원자탄인 ‘뚱보’(Fat Man)가 나가사키에 투하됐다. 이로 인해 1945년에만 히로시마에서 14만명, 나가사키에서 7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에는 4만명의 한국인도 포함돼 있었다.

원자탄을 둘러싼 과학자들의 행동 방식은 매우 다양했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실라르드는 1939년 아인슈타인과 함께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치가 원자탄 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므로 미국 정부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편지는 미국의 원자탄 개발 사업인 ‘맨해튼 계획’이 출범하는 데 산파역을 담당했다. 그러나 1944년 여름에는 독일이 원자탄 제조를 사실상 포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실라르드는 프랑크를 비롯한 시카고대학의 과학자를 결집해 원자탄 투하를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다.
송성수 부산대 교양교육원 원장 한국과학기술학회 회장

아인슈타인도 실라르드와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아인슈타인은 1939년에 편지를 보낸 것이 자신의 가장 커다란 실수였다고 말했다. 그는 1955년 영국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러셀과 함께 핵무기 폐기와 과학의 평화적 이용을 호소한 선언문을 작성했다. 그 선언문은 1957년 세계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국제평화를 위해 설립한 퍼그워시 회의의 기초로 작용하기도 했다.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견한 과학자로서 독일 우라늄 클럽에서 활동했던 하이젠베르크는 원자탄 연구에 대해 일종의 지연작전을 전개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나치가 원자탄을 보유하게 되면 어떤 불상사가 발생할지 모르기에 고의적으로 태업을 벌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견해를 액면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렵지만, ‘부분과 전체’라는 회고록에는 인간적 과학에 대한 하이젠베르크의 문제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과학자는 제한된 영역 안에서 부분적인 진리를 탐구하는 위치에 놓여 있지만, 인간적 과학을 위해서는 전체를 보는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원자탄과 관련된 과학자의 목록은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다. 1938년에 핵분열 현상을 알아냈던 오토 한은 자신의 발견으로 수많은 사람이 사망하는 결과가 빚어졌다고 크게 자책했다. 이와 달리 사이클로트론을 개발한 과학자로 맨해튼 계획의 출범에 기여했던 로런스는 원자탄이 전쟁을 조기에 종료시켜 미국인 희생자를 줄였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푹스와 같이 스파이 노릇을 하는 과학자도 있었다. 그는 미국의 원자탄 독점이 야기할 문제점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1944년부터 맨해튼 계획의 내용을 소련에 보고하기 시작했다.

맨해튼 계획의 과학기술 부분 책임자였던 오펜하이머는 1845년 7월에 있었던 원자탄 실험 직후에 “나는 죽음의 신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라고 중얼거렸다. 그는 나중에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함으로써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쓰고 공직에서 물러나는 비운을 겪었다. 이에 반해 텔러는 맨해튼 계획에 참여하면서 수소폭탄 개발에 강한 의지를 보였으며, 1950년대에는 다른 과학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소폭탄 개발 사업의 책임자로 활동했다. 그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질문에 대해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말로 일축했다.

원자탄은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중요한 화두로 만들었다. 옛날의 과학자들은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연구가 사회적 책임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원자탄을 둘러싼 연구 활동은 엄청나게 큰 위험과 결합하게 됐으며, 이에 따라 과학자들은 사회적 책임이라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과학자들의 사고방식과 행동패턴은 개인별로 상당한 차이를 보였지만, 어떤 식으로든 원자탄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하고 다른 사람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은 동일했다. 인류의 생존과 세계 평화를 유린하고 있는 핵, 만약 우리가 1945년 부근에 활동한 과학자였다면 원자탄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했을까.

송성수 부산대 교양교육원 원장 한국과학기술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