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08-16 19:03:47
기사수정 2018-08-16 22:26:36
여·야·정 상설협의체 가동 합의 / 文 “재난안전법·누진제 등 개선 필요 / 비례·대표성 보장 선거제도 개편 지지” / 야권 ‘탈원전·소득주도정책’ 쓴소리 / 文 “원전, 경제 걸림돌 안되게 할 것” / 드루킹 특검연장 요구에는 대답 안해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가 16일 여·야·정 상설협의체 가동 등에 합의하면서 문 대통령의 협치 구상도 뒤늦게 첫발을 뗐다. 하지만 4·27 판문점 선언 비준안과 각종 민생·경제법안 처리 문제 등에선 여야 간 확고한 입장차가 드러났다. 문 대통령의 협치 구상이 오는 11월 첫 상설협의체 회의를 거쳐 실제 결실을 맺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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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발언하는 文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5당 원내대표 초청 오찬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여·야·정 상설협의체 가동과 함께 4·27 남북정상회담 판문점선언에 대한 국회 비준을 요청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여·야·정 협의체 가동으로 협치 ‘물꼬’
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는 이날 청와대에서 오찬 회동을 갖고 여·야·정 상설협의체의 일정과 방향에 대해 의견을 모았다. 여·야·정 협의체는 분기별로 연 4회 개최를 원칙으로 하되 필요 시, 여야 합의에 따라 추가로 개최하기로 했다. 국회와 정부가 머리를 맞대는 협의체 방식은 지난 대선 당시 문 대통령이 내세운 핵심 공약이었지만, 그간 야당의 비협조 등으로 진전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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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는 文대통령과 與野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여야 5당 원내대표와 함께 오찬장이 마련된 청와대 인왕실로 이동하고 있다. 왼쪽부터 바른미래당 김관영, 민주평화당 장병완,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 문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 권한대행. 청와대 사진기자단 |
문 대통령은 이날 회동에서 “사실 국민들은 정말 여·야·정 간의 협치를 아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며 협의체 가동을 재차 제안했다. 이에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대통령의 정책 속도와 방향도 조절하고 현실에 부합하는 정책을 만드는 데 야당도 기꺼이 참여하겠다”고 화답하면서 협의체 정례화가 성사됐다.
문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들은 국민안전을 위한 법안, 소상공인·자영업자·저소득층 지원을 위한 법안,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혁신 법안 등 민생경제 법안을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폭염을 재난에 포함하는 재난안전법이라든지 전기요금 누진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며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혁신에 대해서도 뜻을 모아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산업자본의 인터넷전문은행 지분 보유율 기준을 올리는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과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한 규제 샌드박스 5법이 우선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오찬 회동 직후 정부에 국회 입법 논의와 별개로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세 부담 완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선거제도 개편 논의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지난 개헌안 제시 때 내용을 담았는데 비례성·대표성을 제대로 보장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 대통령 개인적으로는 강력하게 지지한다”며 소수 야당에 힘을 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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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내대표 이름 적힌 느티나무펜 선물 청와대가 16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오찬 회동에 참석한 여야 5당 원내대표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준비한 느티나무펜. 겉면에는 여야 원내대표 및 원내대표 권한대행의 이름이 각각 적혀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탈원전·소득주도성장 놓고는 ‘대립’
이날 회동은 전반적으로 큰 대립 없이 여야 원내대표들이 각자 의견을 이야기하고 문 대통령이 이를 경청하거나 답변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일부 현안에 대해서는 서로 대립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특히 제1야당인 한국당 김 원내대표와 문 대통령 간 의견차가 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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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6일 낮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5당 원내대표 초청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대표적이다. 김 원내대표는 회동 후 기자간담회에서 “여·야·정 상설협의체 첫 번째 의제로 탈원전 정책을 넣으려 했는데 들어가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김 원내대표가 비공개 회동에서 대통령에게 “한국당 입장은 ‘스텝 바이 스텝(step by step)’으로 탈원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는데 문 대통령이 “일단은 탈원전이라는 표현부터 적절하지 않다”며 “7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탈원전을) 하고 있는데 이보다 더 ‘스텝 바이 스텝’일 수는 없다”는 취지로 반박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또 문 대통령은 “경제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탈원전 문제를 (추진)할 것”이라며 “월성원전은 워낙 노후해서 폐쇄하지만 신고리 원전 3개는 신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드루킹’ 특검 연장도 요청했는데 문 대통령은 그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평화당, 정의당 원내대표도 문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했다. 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는 “소득주도성장 정책, 공공부문 확대 정책이 저성장과 경제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며 “방향을 전환해야 하며 규제 개혁도 광범위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원내대표는 국민연금 논란에 대해서도 우려를 전달했다.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 직무대행도 “혁신성장이 규제 완화라는 방향으로 안전장치를 마련한다고는 하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는 잘 살펴야 한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의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안 처리 요청에 평화당과 정의당은 지지 입장을 밝혔지만,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반대하면서 이번 오찬 회동에선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박세준·이도형 기자 3j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