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08-19 19:14:32
기사수정 2018-08-20 15:04:50
포획에 바키타돌고래 15마리만 남아 / 양서류 30%·식물 68%가 멸종위기 / 지구 역사 최초의 인간에 의한 재앙 / "동식물 멸종은 생태계 붕괴 부채질 / 다양한 생물종 보존만이 인류 살길” / 세계 196개국 생물다양성협약 이행
해양 포유류 중 멸종에 가장 근접한 동물은 바키타돌고래다. 몸길이 1.5m의 아담한 체형으로 눈 근처에 검은 점이 있어 ‘바다의 판다’라고 불리는 이 돌고래는 현재 지구에 15마리밖에 남아 있지 않다.
바키타돌고래의 비극은 인간의 탐욕이 원인이다. 바키타돌고래는 멕시코 북부 캘리포니아만에서만 서식하는데 민어의 일종인 ‘토토아바’와 서식지가 겹치는 게 문제가 됐다. 20여년 전부터 토토아바의 부레가 보양식이라는 근거 없는 설이 중국에서 퍼지면서 무분별한 남획이 시작됐는데, 몸집이 비슷한 바키타돌고래도 함께 그물에 걸리면서 폐사하는 사례가 급증한 것이다.
2015년 엔리케 페냐 니에토 당시 멕시코 대통령이 남획을 조장하는 그물 사용을 금지했지만 CBS는 불법 조업이 그치지 않아 3년 전 60마리였던 바키타돌고래도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고 전했다. 환경보호단체 와일드에이드의 피터 나이츠 대표는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생물종을 멸종으로 이끈 인류의 실패를 상징하는 사례로 바키타돌고래가 거론될까봐 겁이 난다”고 말했다.
지구상의 생물들이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각종 개발 및 포획 그리고 지구온난화 등 기후 변화에 직격탄을 맞아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현재 ‘6번째 대멸종’으로 부를 만큼 빠른 속도로 생물종이 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과학자들은 소행성 충돌과 같은 외부 요인이 아닌 특정 생물(인간)이 원인이 돼 생물종이 사라지는 건 지구 역사상 처음이라고 지적한다.
환경 파괴와 일시적인 생태계 이상 현상은 복원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생물의 멸종은 돌이킬 수 없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생태계에서 그 피해가 고스란히 인류에게 돌아온다는 점에서 생물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간 탓 멸종 위기에 놓인 생물종
미국 시민단체 생물다양성센터(The Center for Biological Diversity·CBD) 등에 따르면 생태계에서 생물종의 멸종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연간 1~5개의 종이 사라지는데 현재는 이보다 1000~1만배가량 빠른 속도로 생물종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매일 수십종이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CBD 측은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21세기 중반 지구상의 생물종 중 30~50%가 멸종 위기를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동식물의 멸종은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먼저 가장 취약한 군으로 꼽히는 양서류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7월 현재 파악하고 있는 6260종 중 3분의 1(2030종)이 멸종되거나 멸종 위기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멸종된 38개종 중 1980년 이후 9개종이 사라진 것으로 드러나 멸종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속도는 자연적인 멸종 속도보다 약 4만5000배 빠른 것이다. 대표적으로 페루의 옥사팜파 지역에만 서식하는 옥사팜파 독개구리는 농경지 확대로 서식지를 잃으면서 IUCN 기준 멸종 바로 아래 단계인 ‘심각한 멸종 위기’ 상태에 처해 있다. CBD는 “양서류는 광산의 카나리아처럼 환경 파괴의 심각한 상태를 미리 예고한다”고 지적했다.
파충류도 사정이 심각하다. IUCN이 지난달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파충류의 10%를 차지하는 호주 토종 파충류 975종 전체가 생존 위기를 겪고 있고, 이 중 7%가 멸종 위기 상태다. 외래종인 야생 고양이들이 연간 6억마리의 파충류를 사냥하면서 크기가 작은 ‘초원 귀없는 도마뱀’(Grassland Earless Dragon) 등의 생존이 위태로워진 것이다. 또 호주 바틀 프레르산에만 서식하는 도마뱀 바틀 프레르 쿨-스킹크는 기온이 1도 오를 경우 향후 30년 안에 개체수가 절반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는 등 파충류는 지구온난화에도 영향을 받고 있다.
포유류 중에서는 절반 정도가 멸종 위기를 겪고 있는 영장류의 보호가 시급한 상황이다. 국제야생보존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영장류 중 마다가스카르에 서식하고 있는 여우원숭이는 불법 벌목으로 서식지를 잃고, 식용으로 사냥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111종 중 105종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 또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는 호주에서는 산불을 예방하기 위해 대규모 벌목이 진행돼 굶어 죽는 코알라가 일주일에 한 번 보고되는 등 비극이 이어지고 있다.
30만여종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식물 중 IUCN이 1만2000여종을 분석한 결과 68%가 멸종 위기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식물은 특히 서식지가 파괴될 경우 스스로 움직일 수가 없기 때문에 환경 변화에 더욱 취약하다. 바헤닝언대학은 지구온난화로 평균기온이 섭씨 3도 올라갈 경우 산딸기 등 네덜란드에 서식하는 전체 식물 중 40%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카는 “2000년간 생존했던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바오밥나무 13그루 중 9그루가 기후변화 탓에 죽거나 시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인간의 개발로 서식지가 없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바오밥나무 8종 중 1종이 조만간 멸종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동식물의 멸종은 인류의 잿빛 미래
동식물의 멸종은 인간의 힘으로 원상 복구가 불가능한 데다 장기적으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영국 UCL의 생물학 교수인 엘리자베스 보크스는 ‘더 컨버세이션’에 보낸 기고문을 통해 인간이 다양한 생물로부터 실질적인 이득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나무와 습지가 오염물질을 걸러 수질을 깨끗하게 유지해주고, 해안가의 맹그로브 나무가 폭풍의 피해를 낮춰주는가 하면 도시 주변 숲은 인간의 정신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세계자연보호기금(WWF)에 따르면 인간은 연간 5만~7만종의 식물을 의료용으로 사용하고, 1000억㎏가량의 해양생물을 소비하고 있다. 보크스는 “인류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멸종을 단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다”며 “우리가 자연을 이렇게 파괴하면서 70억 인구가 살 수 있을 것이라 여기는 것은 도박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동식물의 멸종은 서식지가 한정돼 있고, 친척이 별로 없는 특정 생물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는 생태계의 붕괴를 부채질하는 요인이 된다. 보크스는 의사들이 갑자기 사라지면 사회 전체에 일대 혼란이 발생하는 것에 비유해 꽃의 씨앗을 퍼뜨리는 등 자연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특정 개체가 사라질 경우 생물다양성이 단번에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갈 길 먼 생물다양성 제고 노력
다양한 생물종을 보존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1970년대부터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을 통해 이뤄졌다.
1980년대 개발도상국들이 경제 개발을 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산림 훼손 등으로 생물종의 멸종 속도가 빨라지자 IUCN 등 환경단체의 건의를 받아들여 1993년 생물다양성 협약(CBD)이 발효됐다. 8월 현재 196개국이 가입한 이 협약은 2010년 생물다양성전략계획 2011-2020을 채택한 상황이다.
이 계획에 따라 각국은 2020년까지 숲 등 자연서식지 손실비율을 최소 절반으로 줄이고, 어류 남획 제한 및 고갈된 종의 보호 조치를 취하는 등 20개 항목을 지키기로 한 상태다.
하지만 2014년 발간된 유엔 보고서는 “전 세계 육지의 17%를 보전하자는 목표는 지켜질 것으로 보이지만 조류, 포유류, 양서류의 평균 멸종 위험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며 “동남아시아 산호초의 95%가 멸종 위기에 처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지난달 멸종위기종 지정 요건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멸종위기종보호법(ESA)을 개정하겠다고 밝히는 등 생물 다양성 제고에 역행하는 정책도 끊이지 않고 있다.
가디언은 경제적 영향력과 상관없이 동물을 보호하던 기존 법률이 개정됨에 따라 북극곰, 산쑥들꿩, 회색늑대, 삼각주 빙어, 코호 연어, 그리즐리 곰의 서식지가 원유 개발로 파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데이비드 맥도널드 옥스포드대 교수를 인용해 “생물다양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인류에게도 미래는 없다”며 “100만년 이상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해 온 생물들이 사라지는 것은 인류가 ‘생명의 도서관’을 불태우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