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밀로의 비너스’와 국외 문화재

佛에 문화재 약탈당한 그리스 / 정부 앞장서 귀환 캠페인 벌여 / 韓 17만여점 20개국에 뿔뿔이 / 소재 파악하고 되찾기 힘써야 높이 2m4㎝. 두 팔이 없어 오히려 더 유명해진 석상 ‘밀로의 비너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와 함께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멜로스의 아프로디테’(Aphrodite of Melos)라고도 불린다. 여신은 앞으로 내민 왼발을 신전의 계단 위에 올려 놓고, 한 층 아래 오른발에 체중을 싣고 서 있다. 하반신은 옷으로 가려졌으나 상반신은 나체이며 두 팔은 떨어져 나간 상태다. 오른손은 왼쪽 다리께로 내려지고 왼손은 팔을 앞으로 내밀어 사과를 든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820년 4월 8일 에게해에 산재한 키클라데스제도의 밀로스섬에 있는 아프로디테 신전 근방에서 밭을 갈던 그리스인 농부 요르고스 켄트로타스에 의해 발견되었다. 마침 이 섬에 정박 중이던 프랑스 해군장교 쥘 뒤몽 드위빌이 조각상의 가치를 인식하고 오스만터키 제국 주재 프랑스 대사였던 샤를 프랑수아 드 리파르도를 설득해 이를 구입했다. 이듬해 석상은 루이 18세에게 헌납되었고 왕명에 따라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821년 당시 석상 모습을 드로잉한 스케치도 루브르박물관에 함께 소장되어 있는데 오른팔이 좀 더 남아 있는 모습이다. 여기까지가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출토될 때부터 두 팔이 없었던 ‘밀로의 비너스’를 프랑스가 그 무렵 그리스 지역을 지배하던 오스만터키 제국으로부터 사왔다는 것이다. 
김신성 문화체육부장

하지만 밀로스섬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이와 다르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밀로의 비너스’는 두 팔이 부러진 채로 프랑스에 약탈당한 아픔을 지닌 문화재다. 석상을 차지하기 위해 프랑스와 터키 해군이 격전을 벌였으며 이때 한쪽 팔이 부러진 석상이 바다에 빠졌고 이를 프랑스 해군이 건져갔다는 것이다.

심지어 루브르박물관이 석상을 오스만터키로부터 정식수입한 작품으로 꾸미기 위해 남은 한쪽 팔마저 부러뜨려 아예 두 팔이 없는 ‘밀로의 비너스’로 만들었다는 설까지 나돈다.

밀로스섬에서는 ‘밀로의 비너스’를 프랑스의 전시 약탈 문화재로 규정하고 출토된 본래 자리로의 귀환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리스 정부도 나섰다. 석상이 발견된 지 200주년이 되는 2020년까지 반환해줄 것을 프랑스 정부에 요청해놓은 상태다. 그러나 대다수의 전시작품이 해외 약탈 문화재로 이루어진 루브르박물관 입장에서 이 같은 요청을 받아들일 리는 전무해 보인다.

19세기 중엽 서구 열강들은 전 세계를 침략하면서 문화재 약탈을 마치 국위 선양쯤으로 여겼다. ‘밀로의 비너스’처럼 세계 곳곳의 문화재가 약탈되고 파괴됐다. 이집트 스핑크스의 수염은 영국박물관으로 실려갔고, 인도 타지마할의 수많은 보석들은 영국 동인도회사가 뜯어갔다. 프랑스와 영국 연합군은 청나라의 원명원을 약탈한 뒤 불살랐고, 조선의 외규장각 도서들도 병인양요 때 침탈당했다. 일제는 청자와 백자, 석탑과 불상, 회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우리의 문화재들을 빼앗아 갔다.

제국주의의 야욕 아래 세계 곳곳 대량의 문화재들이 침략국의 도시로 옮겨졌다. 식민지배를 겪은 나라의 국민들은 오늘날 자신들의 조상이 만든 문화재를 엉뚱한 나라의 박물관에서 마주 본다.

17만2316점.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파악하고 있는 우리의 국외소재문화재 현황이다. 지난 4월 기준으로 20여개국에 흩어져 있다. 확인된 것만 그렇다는 이야기다.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때마침 세계일보는 ‘해외 우리 문화재 바로알기’ 시리즈를 기획 연재 중이다. 힘없던 시절의 상처난 자존심을 치유하고 이제는 빼어난 문화재로써 현지활용법 또한 제시할 것이다.

정치·경제가 나무의 뿌리라면 문화는 꽃이자 열매이다. 정치·경제가 몸이라면 문화는 정신이다. 문화재는 그 정신이 빚어낸 산물이다. 국외소재문화재를 파악하고 되찾아 오는 일은 곧 ‘정신을 올바로 차리는 일’이란 얘기다.

김신성 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