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08-26 12:00:00
기사수정 2018-08-26 10:10:41
재직 당시 회식서 상습 추행 / 항소 안 해 벌금형 확정 / 법무·검찰 여직원 10명 중 6명 “성희롱 피해”
여검사를 아이스크림에 빗댄 성희롱 발언으로 옷을 벗은 전직 부장검사가 “성추행해도 되냐”면서 후배 여검사를 추행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모(53) 변호사는 2015년 3월 서울의 한 지방검찰청 부장검사 재직 시절 술집에서 가진 2차 회식 자리에서 A 여검사에게 “성추행 한 번 해도 되냐”고 말하며 그를 강제로 껴안았다.
B 여검사와 건배를 한 뒤에는 “참, 안주를 안 먹었네”라며 그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그해 2월에는 노래방에서 회식 자리를 이어 가다가 “러브샷을 하자”며 술잔을 든 팔을 C 여검사 목에 감고 끌어안은 채 술을 마시고, 그의 볼에 입술을 갖다 댔다.
김 변호사는 2015년 2∼4월 이처럼 업무상 위력으로 회식 자리에서 여검사 총 4명을 상대로 추행을 일삼았다. 이들 모두 당시 김 변호사에게 업무상 지시를 받는 관계였다. 김 변호사는 그해 5월 아무런 징계나 처벌을 받지 않고 검찰을 떠났다.
올해 1월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폭로로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이 꾸려지면서 김 변호사는 성폭력처벌법상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달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 최미복 판사는 그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하고 24시간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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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의 성추행 피해 사실을 폭로해 사회 각계의 `미투(Me too) 운동`을 촉발한 서지현 검사가 지난 7월 16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안태근 전 검사장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사건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인신문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최 판사는 당시 “피고인은 사회의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이웃과 공동체를 지켜야 할 사명을 부여받은 검사로서 범행을 저질렀고, 피해자들은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면서 김 변호사를 질타했다.
다만 피해자들 모두 “처벌이나 불이익한 처분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한 점이 양형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김 변호사와 검찰 모두 항소하지 않으면서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검찰 내부의 이 같은 성범죄는 고질적인 병폐로 지목된 바 있다.
최근 해산한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가 법무부 본부와 소속 기관의 여성 직원들을 상대로 전수 조사를 벌인 결과, “성희롱 등 피해를 입었을 당시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참고 넘어갔다”는 응답이 검찰의 경우 66.6%로 법무부 본부·산하 기관(63.2%)보다 많았다.
성희롱·성범죄 사건이 공정하고 신속하게 처리될지에 대한 기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검찰에서 근무하는 여성 검사·수사관·실무관 응답자 61.4%가 “아니다”고 답했다. 이 역시 법무부 본부·산하 기관(57.9%)보다 많았다. 내부 고충 처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성희롱이나 성추행 등 성범죄 피해를 당하고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대책위 조사 결과 법무·검찰 내 성희롱·성범죄 발생률은 61.6%에 달한 반면, 259개 기관에 설치된 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의 성희롱 고충 사건 처리 건수는 2011~2017년 18건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법조계 관계자는 “여검사들이 늘어나면서 남자 검사들은 ‘조직이 망했다’고들 생각하고 여검사들이 출산 휴가나 육아 휴직을 가면 욕을 먹는 게 현실”이라며 “남성 중심적이고 보수적인 조직 문화가 바뀌어야만 한다”고 꼬집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