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의세상보기] 대학, 20대의 전유물이 아니거늘

생애주기별 평생교육체계 구축/고령사회 대응하는 필연적 요구/온라인 강의 ‘K 무크’ 잇단 호평/국가 차원서 전폭적 지원 나서야 요즘 대학가는 ‘코스모스 졸업식’이 한창이다. 예전에는 8월 졸업생 수가 많지 않았지만 취업난에 졸업 학기를 미루는 학생이 증가하면서 최근엔 2월 졸업생 수와 거의 비등하게 된 것 같다. 대학의 마지막 학년을 사(死)학년이라 칭하고 8학기 정상적 졸업을 ‘조기 졸업’이라 부르는 상황에서, 대학 문을 나서는 제자들을 바라보자니 기대 반 우려 반에 갖가지 생각이 밀려온다.

확실한 것은 대학이 20대 초반의 전유물인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는 것. 20대 초반까지 학습한 지식과 정보만으로는 향후 최소 50여년을 활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고령사회를 헤쳐가기는 역부족이라는 사실. 과학과 기술의 눈부신 발달에 힘입어 사회 전반적인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만큼, 개인은 생애주기를 지나는 동안 필요할 때면 언제든 낡은 지식은 탈(脫)학습하고 새로운 정보를 재(再)학습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의 장을 들고 나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1990년대 후반 미국의 UCLA-Extension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UCLA의 학부 및 대학원 재학생이 3만여명 규모였는데, 평생교육원에 해당하는 Extension의 학생 수는 10만명이 훌쩍 넘는다는 소식을 듣고, 강한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Extension 학생들은 연령제한 없이, 대학 졸업장과 무관하게, 언어와 인종의 장벽을 뛰어넘어, 자신에게 필요한 과목을 수강 중이었고, 행정 업무의 90%는 은퇴자들의 자원 활동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생애주기별 평생교육체계를 구축해야 함은 고령사회의 필연적 요구일 터. 대학은 사양산업(?)이지만 교육은 블루오션이란 사실에 미래학자 다수가 동의를 표하고 있음은 상식이다. 이미 대학을 위시해 지방자체단체 및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시민대학 주부대학 등의 평생교육 프로그램이 시행돼왔으나, 이젠 평생교육체계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평생교육을 향한 새로운 시대적 요구를 정확히 간파한 미국에서 그것도 세계 최고의 명문대인 하버드와 스탠퍼드를 중심으로 무크(MOOC·대규모 공개 온라인 강좌)가 개설되기 시작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일반인 모두를 대상으로 세계 유수 대학의 명강의를 무료 수강할 수 있도록 한 무크는 시작과 더불어 열렬한 관심과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냈음은 물론이다. 이는 수준 높은 교육을 통해 지식과 정보의 공개와 공유가 이루어질 때, 시민사회의 전반적 성숙이 가능해진다는 측면에서도 박수를 받았다.

미국의 무크를 벤치마킹한 한국의 K 무크도 2015년 가을 27개 강좌를 시작으로 현재는 인문 사회 공학 자연 등 대분류 324개 강좌, 언어 문학, 기계 금속 등 중분류 59개 강좌가 제공되고 있고, 장단기 강좌에 외국어로 진행하는 강좌까지 갖추었으니, 길지 않은 시간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셈이다.

“환갑 지난 나이에 대학에서나 들을 수 있는 강의를 듣게 되어 정말 기쁘고 감사합니다. 이제 손주들 만났을 때 주눅 들지 않고 제 교양을 자랑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저는 지금 은퇴하고 인생 2모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먹고사느라 바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사회적 이슈들을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참으로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는 터키의 선교사입니다. 한국어로 된 강의를 들을 수 있다니 꿈만 같습니다.” 2015년 시범강좌로 개설했던 ‘인간행위와 사회구조’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은 한국형 무크가 성공적으로 첫 발을 내디뎠음을 실감나게 해주었다.

대학의 한 학기에 해당하는 15주 동안 K 무크 동영상 강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10대 중·고등학생부터 60, 70대 조부모 세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육수준 및 인생경험에 더하여 다채로운 접속 동기를 지닌 이들을 게시판 글을 통해 만나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실제로 K 무크 수강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강의를 수강할 수 있음에 깊은 만족을 표하고 있고, 한번 들어 이해되지 않을 경우는 반복해서 들을 수 있다는 점, 자신이 선호하는 주제를 선별해서 들을 수 있다는 점 등도 동영상 강의의 강점으로 지목하고 있다.

물론 온라인 강의의 경우 휴먼 터치의 욕구를 충족하기 어렵다는 점과 강의 이수율이 높지 않다는 약점이 있으나, 이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보완 가능하다. K 무크 개설 첫 해 온라인 수강생을 위한 오프라인 특강을 제공하면서 열렬한 지지를 받은 바 있고, 대학 및 각종 교육기관에서 동영상 강의를 활용해 플립트 러닝(flipped learning·거꾸로 학습)을 실천하기도 하며, 수강생들이 소규모 스터디 그룹을 구성해 온라인 강의의 약점을 극복하고 있기도 하다.

K 무크의 경우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수준 높은 온라인 강좌가 다수 개발되고 있으나 선진국과 비교해볼 때는 여전히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든 기분이다. 사회 변화의 흐름을 선도하면서 시민들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할 수 있는 강의 콘텐츠 개발 및 강의 기법의 정교화를 위해서는 적지 않은 재정 및 인력이 소요되는데, 이를 개인의 재능기부나 대학의 사명감, 공공기관의 책임감에 호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교육이라는 공공재의 선진화를 위해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재정 지원과 실질적인 행정 지원이 절실히 요구된다 하겠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