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은 예산으로 외유, 공직자는 쪼개기…시행 2년 꼼수 여전

[스토리세계-김영란법2년①] 여전한 김영란법 꼼수 횡행
대한민국 부패척결의 시발점으로 여겼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이 오는 28일 2년을 맞이한다.

헌정사상 유례없던 정치권과 재계, 언론계를 강타한 김영란법은 식사메뉴부터 선물세트 변화까지 우리 삶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하지만 정작 국민적인 기대를 받아왔던 김영란법의 목적인 부패척결과 정경유착이라는 결과를 도출해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여전히 국회의원들은 피감기관의 예산으로 해외출장을 다니고 기업들은 김영란법을 피하기 위해 꼼수회계 처리를 하는 등 논란을 만들어 내고 있어서다. 두돌을 맞이하는 김영란법이 남긴 것과 가야할 길을 살펴봤다.

◆김영란법 무시하고 떠나는 ‘의원님들 해외여행’

“피감기관에서 겉으로는 이런저런 명분을 붙이긴 하는데, 사실 의원님들 쉬다 오는 거죠. 하루이틀 일도 아닌데 뭘....”

5일 최근 국회의원과 보좌진, 입법조사관이 150여명이 피감기관 예산으로 외유성 해외출장을 다녀왔다는 논란이 일자 국회의 한 보좌관은 이렇게 토로했다.

김영란법 시행 1년이 다가왔지만 여전히 국회와 외교부 등 ‘힘있는 기관’에서는 김영란법의 울타리가 보이지 않는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김영란법 시행 이후 피감기관 예산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온 국회의원과 보좌진, 입법조사관이 157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관별로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이 12차례, 39명에게 해외출장비를 지원해 가장 많았고 국무총리비서실이 30명, 한국국제협력단이 24명으로 뒤를 이었다.

출장 목적도 분명하지 않고, 출장의 성과도 없어 보인다. 공식 일정은 몇 시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전부 관광성 일정으로 채워진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배우자가 같이 간 경우도 여럿이라고 한다. 이런 해외 출장을 가면서 국회의원들은 비즈니스석을 이용했고, 1인당 1000만원 이상씩을 쓰기도 했다.

문제는 자기 기관의 돈으로 해외 출장을 간 것이 아니라 자기 기관의 감사·감독를 받는 피감사·감독 기관의 돈으로 해외 출장을 간 것이다. 이것은 의원님들의 우월한 지위를 남용하는 것이고 김영란법을 위반한 것이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공직자는 직무 관련 여부에 관계없이 1회에 100만원 이상의 편의를 제공받아서는 안 된다. 이것을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이 법은 2016년 9월 28일부터 시행됐는데, 그 이후에도 많은 국회의원, 고위공직자, 지방의원들이 피감사 기관의 예산으로 해외 출장을 다녀온 것으로 드러났다.

◆‘쪼개서 밥값내기’ 등 편법 난무...김영란법은 제대로 작동하나

“어차피 누구누구 먹었는지 어떻게 압니까. 대충 직원들 여러명 숫자 맞춰두고 끊는거죠.”

김영란법 시행 이후 가장 먼저 논란의 불을 지핀 곳은 고급 식당들이다. 음식으로 로비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국회 앞이나 서초동 등에는 고급 한정식집이 즐비한다.

김영란법 시행 초기 많은 공직자나 기업에서는 김영란 메뉴를 고르느라 노심초사였지만 지금은 김영란법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찾기 힘들다.

지난 8월 서울 여의도의 한 한정식집에서 국회보좌관 A씨는 대기업 대관 담당자와 함께 저녁자리를 가졌다. 밥값은 한정식에 술까지 곁들여 10만원이 훌쩍 넘었지만, 당당하게 법인카드로 결제하고 나갔다.

‘김영란법 위반이라는 것을 알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기업 대관 담당자는 “하루이틀 보는 사이도 아니고 일적으로 만났지만 형동생으로 지내다보면 김영란법을 잊을 때가 많다”며 “만에 하나 문제가 될 만한 여지가 있으면 팀원들과 함께 먹은 것으로 정리를 하면된다”고 말했다.

김영란법은 현재 식사는 3만원, 선물5만원, 경조사비의 경우 5만원까지로 제한하고 있다. 청탁이 없다하더라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처벌받게된다. 2년 전 김영란법이 처음 시행되면서 란파라치라는 각종 신조어까지 생겨나며 사회 곳곳에서 김영란 열풍이 불었던 것과 비교하면 현재 김영란법의 자취는 찾기 쉽지 않다.

많은 식당들이 김영란 메뉴를 없앴고, 기업들은 오지도 않은 직원들의 이름까지 거론하며 법인카드로 식사비를 결제한다.

대기업의 한 대관 관계자는 “추석선물의 경우에 회사 전체에서 발송하면 아무래도 기록이 남으니 가격대를 맞추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김영란법 상관없이 보내는 경우가 많다”며 “국감이 가장 중요한 기업들 입장에서는 국회 의원들이나 보좌진에게 신겨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김영란법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는 김영란 서강대 석좌교수. 연합뉴스
◆정리되지 않은 김영란법?...인삼·굴비 때문에 개정 압박

지난 1월 국민권익위원회는 경조사비 상한선은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내리고, 농·축·수산물의 선물 상한액을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올리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가결해 현재 시행 중이다.

공직자가 원활한 직무수행 등을 위해 예외적으로 받을 수 있는 선물 상한액은 농축수산물과 농축수산가공품에 한해 현행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변경됐는데 다만 농축수산 가공품은 농축수산물을 원료로 하거나 재료의 50% 이상 사용해 가공한 제품이어야 한다.

당시 농축수산물 품목에 한해 금액이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향됐지만 농축산업계는 “다행”이라면서도 매출에는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에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식사비 금액을 3만원에서 5만원 인상을 주장했던 외식업계는 자신들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서 망연자실했다.

문제는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큰 가치를 목표로한 김영란법이 산업계의 반발로 인해 개정했다는 선례를 남겼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국회에서는 농축산업계 등의 목소리를 남은 개정안 등이 발의되고 있다.

지난 6월 자유한국당 김영란법TF 팀장 이완영 의원은 김영란법 개정안을 재발의했다. 2016년 7월 대표발의한 법안이 폐기됨에 따라 또다시 발의한 것이다.

이는 한우·전복·굴비·송이·인삼 등의 경우 대체로 10만원 이상을 호가하기 때문에 효과가 없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 한우 등 축산물은 시행령 개정으로 가격이 비교적 낮은 수입 물량만 더 확대됐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3월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되어 있던 김영란법 개정안은 8개나 됐다. 대부분 권익위의 시행령 개정으로 개정 취지가 상당부분 반영됐다는 이유로 무더기 폐기되긴 했지만,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개정안 발의 이후 농수축산물을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통과시키고 김영란법 개정안을 조속히 의결해 줄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국회 농해수위의 한 관계자는 “김영란법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어려운 현실에 있는 농축산업계의 이야기를 무시할 수 없는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고 말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