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은 '빌린 박씨'… 혼혈인도 한국인입니다"

1970년 부산발 서울행 완행열차에서 한 청년이 쓰러진 채 발견됐다. 수면제 수십알을 삼키고 자살을 기도한 박근식(사망 당시 57세)씨의 양복 안에는 혼혈인으로 사는 괴로움을 토로하며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진정서가 들어 있었다. 다행히 목숨을 부지한 청년은 평생 혼혈인의 권익 신장을 위해 활동했다.

한국혼혈인협회장을 지낸 혼혈인 1세대 박근식 씨가 세상을 떠난 지 내년이면 10년이 되지만, 우리 사회의 인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피부색,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배척한다. ‘다문화’로 새로이 포장했지만 내용물은 그대로다.

11일 서울 종로구 사진위주 류가헌 갤러리에서 개막하는 이재갑 작가의 사진전 ‘빌린 박씨’에서 이 작가는 수십년간 담아온 박씨의 자취를 전한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혼혈인들의 과거와 현실을 살필 수 있다.

우리나라의 혼혈인 문제의 발단은 미 군정 시절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방인인 아버지와 화목한 가정을 이뤄 잘 산다면 그나마 큰 문제가 없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만 미국으로 돌아가거나 성폭행을 당해 임신한 경우도 많았다. 아버지를 알 수 없는 그들에게 주어지는 성(姓)씨는 어머니의 것이었다.

박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의 성인 밀양 박씨를 따서 박근식이 됐다. 그러나 그는 정작 자신의 성씨를 ‘빌린 박씨’라 했다. 2009년 9월 박씨가 숨을 거두며 남긴 유언은 “나는 한국인이다”였다고 전해진다.

이 작가는 1990년대부터 박씨를 중심으로 혼혈인의 일상을 사진에 담아왔다. 귀촌해 소를 키우면서 혼혈인 자립을 돕는 공동체 농장의 꿈을 키우던 모습,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혼혈인 인권 등을 말하는 모습 등 박씨와 주변 혼혈인들의 소소한 삶을 30여 점의 흑백사진을 통해 만날 수 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사진=이재갑 작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