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09-12 16:09:15
기사수정 2018-09-12 20:55:03
위력을 행사해 하급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김문환 전 주(駐) 에티오피아 대사에게 법원이 실형을 선고했다.
김 전 대사의 판결은 최근 무죄를 선고받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판결과 대조적이다. 두 사건 모두 가해자와 피해자의 상하관계가 뚜렷하고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이라는 혐의가 적용됐다. 하지만 사건 전후 사정과 피해자의 정황 등이 두 사건의 유·무죄를 가른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박주영 판사는 12일 김 전 대사가 부하 직원을 업무상 위력으로 간음한 혐의를 인정하고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또 불구속 상태로 기소된 김 전 대사를 법정구속하고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아동 청소년 관련 기관에 대한 3년간 취업제한 등도 명했다.
김 전 대사는 에티오피아 대사로 근무하던 2015년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부하 직원 1명을 성폭행하고, 2014년과 지난해 다른 여성 2명을 각각 성추행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 전 대사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업무상 지위나 위세를 이용하지 않은 ‘합의된 성관계’라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재판부는 김 전 대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와 비슷한 사건인 안 전 지사가 비서 김지은씨를 간음한 혐의에 대해 1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과 상반된 결론이다. 당시 재판부는 1심에서 안 전 지사와 김지은씨 사이에 ‘위력’이라고 볼 만한 지위와 권세는 있었다고 판단했으나 위력을 행사해 자유의사를 억압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안 전 지사의 1심 당시 사건을 전후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중점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지은씨가 사건이 발생한 직후에도 러시아에서 안 전 지사가 좋아하는 순두부 식당을 찾으려 애쓴 점과 사건 전후 제 3자에게 안 전 지사에 대한 우호적 표현을 했다는 점 등에서 업무적 관계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김 전 대사의 경우 재판부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업무상 이외에 다른 친분이 없다는 점을 주목했다. 또한 사건 당일에도 이성적인 호감이 발생했다고 볼 만한 사정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업무시간 외에 술자리를 자주 마련했는데, 피해자가 자리를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당일 ‘숙제하듯 의무적으로’ 피고인과 테니스를 치고 저녁 식사 요청에 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간음 행위 이전에 두 차례 신체 접촉이 있었을 당시 피해자가 소극적인 행동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했을 뿐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평소 피고인의 지위와 피해자와의 관계 등에 비춰보면 단호하게 항의하기 어려웠다는 피해자의 진술은 수긍이 간다”고 밝혔다.
또한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은 피해자를 두고 ‘받아줬다’고 주장한 김 전 대사 측에 재판부는 “갑자기 이성적 호감이 생겼을 만한 사정이 없는데 과연 피해자의 어떤 행동으로 ‘받아줬다’고 생각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재판부는 “피해자는 불안과 공포로 얼어붙은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가 먼저 진정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 외교부가 다른 성폭력 행위를 조사하던 중 이 사건이 밝혀진 만큼 피해자가 허위로 진술할 만한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