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vs 미 '대북제재 또 엇박자'…북핵 해법 균열 [뉴스+]

북·미 2차 핵담판 앞두고 ‘복병’ 만나/폼페이오 “안보리 결의 이행” 촉구에/왕이 “북·미대화 진전… 점진적 해제를”/러도 ‘세컨더리 보이콧’ 적용에 반발/美 제재·협상 ‘투트랙 전략’ 차질 우려/강경화 “핵없는 한반도 더 가까워질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정부가 대북 협상과 제재를 동시에 동원하는 ‘투 트랙’ 전략으로 북핵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으나 북·미 2차 핵 담판을 앞두고 복병을 만났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중단과 북·미 대화를 구실로 대북 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6·12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교착 상태에 빠진 북핵 후속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10월 중에 4차 방북을 하기로 했다.

악수하는 韓·美 강경화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북한 비핵화 관련 장관급 회의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뉴욕=AFP연합뉴스
미국은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온 이유가 미국 등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은 이에 따라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 이행 단계로 진입할 때까지 대북 제재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북한의 대외 거래 중 90%가량을 중국이 차지하고 있어 중국이 러시아와 함께 대북 제재를 풀면 미국의 대북 지렛대가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폼페이오 장관은 27일(현지시간) 대북 제재 문제를 다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전체회의를 주재하면서 대북 제재 시스템이 흔들림 없이 가동돼야 하고, 중국과 러시아 등 유엔의 모든 회원국이 안보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특히 안보리 결의 2397호에 따라 올해 대북 정제유 공급량을 연간 50만배럴로 제한했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은 명백히 금지된 선박 간 옮겨싣기로 불법 수입이 이뤄지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면서 “안보리 결의안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실현할 때까지 반드시 강력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자리에 선 北·中 리용호 북한 외무상(오른쪽)이 지난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뉴욕=신화연합뉴스
그러나 중국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이날 회의에서 북·미 간 대화가 진전되고 있는 점을 들어 대북 제재를 점진적으로 완화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왕 부장은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줄곧 북·미 대화에서 중대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왕 부장은 “대북 압박이 목표는 아니라는 게 중국의 확고한 입장이고, 제재 이행과 정치적 해법은 동등하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왕 부장은 “적절한 시점에 북한의 조치에 따른 제재 수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모든 협상은 쌍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비핵화 진전을 위한 제재 완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미국이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이나 러시아 등 3국의 기업과 은행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이 주권 국가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제러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 마르고드 발스트룀 스웨덴 외교부 장관은 한결같이 대북 제재 시스템이 유지돼야 한다며 미국 편을 들었다. 그러나 북한의 인접 국가로 대북 제재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이탈하면 대북 제재망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게 된다.

폼페이오 장관은 대북 제재 유지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새 시대의 새벽이 밝았다”며 대북 협상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블룸버그 통신은 “폼페이오 장관은 새벽이 밝았다고 하면서도 대북 제재를 유지해야 하는 모순된 업무에 직면해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관계를 자랑함으로써 폼페이오 장관에게 추가적인 도전을 안겨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해 당사국 대표 자격으로 이 회의에 참석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향후 몇 주, 몇 달이 지나면 항구적으로 평화로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기 위한 공유된 목표에 더욱 가까워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