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10-02 06:29:00
기사수정 2018-10-02 14:57:33
[스토리세계-소년법 논란①] 폐지 찬반 여론 팽팽
“길어야 소년원 2년.”
지난 6월 발생한 ‘서울 관악산 집단 폭행 사건’의 10대 가해자들이 소년법을 악용할 생각으로 이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년법 폐지’ 여론이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14∼17세인 이들은 지난 6월26일 또래 여고생 A양을 불러내 이틀에 걸쳐 노래방과 관악산으로 끌고 다니면서 집단으로 폭행하고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A(17)양 입에 담뱃재를 털어 넣거나 신체 특정 부위를 나뭇가지로 찌르는 등 가혹행위를 벌였고, A양은 전치 5주의 피해를 입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하는 범죄소년들의 범죄 행위가 성인 못지않게 점점 대담해지고 흉포해지고 있다. 만 14~18세의 소년범을 뜻하는 범죄소년은 만 10~13세의 촉법소년과 달리 형사처벌 대상으로 분류되지만, 일반적인 형사처분과 비교해 형량이 높지 않아 소년법 개정 또는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소년법 폐지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는 분석이다.
◆성폭행 방치 사망·소주병 폭행…소년범 범죄 수위 점점 높아져
살인·강도·강간 등 소년 범죄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14일 전남 영광에서는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 두 명이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여고생 B(16)양을 모텔로 불러내 술을 먹인 뒤 성폭행하고 방치해 숨지게 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남학생 2명은 특수강간치사 혐의로 구속됐다.
또 C(15)양은 지난달 15일 충북 청주의 한 편의점에서 야외 테이블을 정리 중이던 아르바이트생 D(31·여)씨의 얼굴을 소주병으로 가격했다. C양은 경찰에서 “나를 쳐다봐 화가 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27일 경기도 김포에서는 E(16)군과 F(16)군이 한밤중에 G(16)군을 불러내 팬티만 남긴 알몸상태에서 주먹으로 때리고 성희롱하며 영상까지 촬영했다. 이들의 폭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해 여름에도 G군을 인근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데리고 가 허벅지를 수차례 때렸다. 경찰은 폭행과 성폭행 혐의로 E, F군을 불구속 입건해 검찰에 송치했다.
10대들이 저질렀다고는 믿기 어려운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최근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만 14세∼18세 학생이 저지른 폭력범죄는 총 1만6000여건으로 1년 전인 2016년보다 1400여건 증가했다. 강력범죄도 지난 5년간 매년 1800건씩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소년범 3명 중 1명은 ‘절도죄’…초범↓·전과 4범 이상↑
가장 많은 소년범 범죄유형은 절도다. 인천에서는 8월31일부터 9월2일까지 새벽 시간대 휴대전화 대리점 6곳의 유리문을 부수고 들어가 휴대전화 60여대(시가 5000만원 상당)를 훔쳐 달아난 H(19)군과 I(16)군 등 10대 5명이 경찰에 붙잡혔고, 부산에서도 올해 4월 초부터 8월 중순까지 심야에 아파트 경비원 휴식시간을 틈타 아파트단지 25곳을 돌며 22차례 주차 차량을 털어 3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J(18)군이 지난달 경찰에 검거됐다.
1일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18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법원에 접수된 전체 소년보호사건 3만4110건 가운데 절도가 1만2127건으로 전체의 35.5%를 차지했다. 지난해 범죄를 저지른 19세 미만 청소년 3명 중 1명 이상이 절도를 저지른 것이다. 이어 폭력행위등에관한법률위반 4350건(12.8%), 사기 2849건(8.4%), 도로교통법 2276건(6.6%), 폭행 1705건(5%) 순으로 집계됐다.
범죄행위를 반복하는 10대들도 증가하고 있어 상습소년범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8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간한 ‘한국의 범죄현상과 형사정책(2017)’ 보고서에 따르면 소년범죄자들 중 초범의 수가 2007년 5만5543명에서 2016년 4만1173건으로 줄어든 반면, 전과 4범 이상의 재범률은 꾸준히 늘고 있다. 2007년 6.9% 수준이었던 4범 이상 재범률은 2016년 15.3%까지 증가했다.
◆현 소년법 아래에선 중죄 저지른 소년에게 중형 선고 못 해
현행법상 범죄를 저지른 만 19세 미만 소년범들이 재판에 넘겨질 경우, 법원의 판단을 거쳐 최종적으로 받게 되는 처분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소년부 송치로, 형사법원에서 가정법원 소년부로 사건을 이송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결정을 받으면 ‘보호 처분’부터 ‘소년원 송치’까지 1∼10호의 처분을 받게 된다. 일반 형사처벌과 달리 전과로 기록되지 않고 가장 높은 10호 처분을 받으면 교도소가 아닌 소년원에서 최장 2년 동안 생활하게 된다.
두 번째는 일반 형사재판과 같은 절차를 거쳐 최종적으로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경우다. 소년법은 장기 2년 이상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청소년에게 단기와 장기를 정한 ‘부정기형’을 선고하도록 하고 있다. 최대 장기 10년, 단기 5년을 선고하는데 단기 형을 복역한 소년범은 수감생활 성적이 양호할 경우 장기가 만료되기 전 형 집행이 종료될 수 있다.
또 소년법은 죄를 범할 당시 18세 미만의 소년이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도 15년 이하의 유기징역을 받도록 제한하고 있다.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적용을 받아 징역 20년으로 가중처벌 되더라도 사형과 무기징역은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 “처벌수위 높인다고 해결 안 돼” vs “피해자 피눈물 생각해야”
10대들의 강력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소년법 개정 또는 폐지를 통해 소년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형사정책연구원 이승현 박사는 ‘한국의 범죄현상과 형사정책(2017)’ 보고서에서 “4범 이상 소년범의 증가세가 계속되고 있어 소년범의 재범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소년범 재범자 관리를 위한 지속적 모니터링과 재범 예방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에 중점을 둬야 한다”면서도 “소년범죄는 가정환경이나 사회환경, 또래 관계 및 미디어 매체 등에 의해 영향을 크게 받고 있으므로, 소년범 개인에 대한 처벌수위를 높인다고 해서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소년범에 대한 교정단계에서 재범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관별 연계도 중요하고, 소년범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적 요소에 대한 변화와 개입을 통해 범죄의 근본적 원인을 해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책이 다각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지난달 16일 한 방송에 출연해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악명 높은 학교 폭력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교화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결국 유영철을 괴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표 의원은 “보호·교육·선도는 당연히 중요하며 경미한 실수와 충동적인 수많은 청소년 범죄자를 집중적으로 보호·보호관찰하라”면서도 “그들 중 자신보다 약한 친구를 폭행하고 성폭행, 살인을 저지르는 강력 범죄까지 보호·교육·선도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피눈물을 생각해야 한다”며 “21세기 범죄 대응은 단연코 강한 처벌이 존재해야 한다”고 소년범죄의 처벌 강화를 주장했다.
김지연 기자
delay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