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더 하고 돈은 못 받고… '노동 착취' 내몰리는 10대들 [청소년 氣 살리자]

(16) 노동인권 없는 알바생의 비애 / 근로계약서 미작성 59% 달해 / 26%는 최저임금조차 못 받아 / 상담·구제 신고비율 1%도 안 돼 / 유엔 권고에도 6년째 상황 열악 / 전문가 “교육 강화·위법 땐 엄벌 / 좋은 일자리 유인 통로 등 시급”
#1. “오토바이 운전을 하면서 휴대전화로 콜(배달 의뢰)을 받아야 합니다. 헬멧이 모자라서 맨몸으로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가 날 때도 잦은데, 치료비는커녕 오토바이 수리비를 물어야 하죠. 연식도, 기종도 알 수 없는 오래된 오토바이를 사장이 부르는 값에 강제로 사야 합니다. 아니면 수리비를 다 갚을 때까지 무급으로 일을 해야 하니까요. 돈 벌려고 왔다가 빚만 늘어나는 동료들이 많아요.”(배달 아르바이트생 이모(18)군)

#2. “수습 기간 3개월 동안은 최저임금을 보장해줄 수 없고, 근로계약서 얘기도 없어 원래 다 그렇게 하는 거로 알았어요. 월급날이 돼도 일주일 이상 지급을 미루는 경우가 허다했고, 급여를 나눠서 줄 때도 있었어요. 정산할 때 돈이 모자란 적이 있었는데 사장님에게 ‘네가 돈을 가져간 것이 아니냐’는 얘기를 들었을 땐 정말 화가 났지만 잘릴까 봐 꾹 참을 수밖에 없었어요.”(식당 아르바이트생 김모(19)양)

중학생과 고등학생 열 명 중 한 명꼴(11.3%)로 아르바이트를 경험하지만, 청소년 아르바이트생 대부분이 불합리한 처우는 물론이고 폭언·폭행에까지 노출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청소년 등 노동 약자를 보호하겠다며 약속한 ‘알바존중법’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청소년의 노동 인권은 사각지대를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유엔아동권리위 권고에도 ‘청소년 노동 인권’은 6년째 밑바닥

앞서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2011년 한국의 18세 미만 근로 아동·청소년이 증가하고 있지만, 야간근무나 최저임금 미준수 등을 지키지 않는 변칙적 노동 관행이 빈번히 일어나고, 적극적인 근로감독 의지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동노동 야기하는 근본 요인 해결’ ‘청소년 근로조건 기준 엄격 시행’ ‘근로환경 노동 감독 개선’ ‘관련 법 조항 제정’ ‘폭행·성추행 방지와 사후 제도 마련’ 등을 권고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12월 제5·6차 유엔아동권리협약 국가보고서에서 “청소년 다수 고용 사업장을 중심으로 최저임금, 서면 근로계약, 임금체불 예방 등 기초 고용질서 준수를 위한 일제 감독을 시행하고 있다”며 “청소년근로권익센터를 설치하여 청소년을 대상으로 교육 및 상담과 권리구제 지원을 하고 있다”고 권고 이행 사항을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 보고와는 달리 아르바이트 청소년들의 노동 인권은 6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 여전히 밑바닥에 머물고 있다. 이런 실정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3일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발표한 ‘청소년 매체 이용 및 유해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아르바이트생 59.3%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 근무했으며, 15.8%는 계약서를 작성했음에도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하거나 근무 조건을 제대로 명시하지 않은 계약서에 서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하는 청소년도 25.8%에 달한다. 임금을 약속한 날짜보다 늦게 지급하거나 적게 주고, 혹은 아예 주지 않는 경우도 28.8%에 이르는 등 상당수 청소년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근무 중 폭언과 폭행, 성희롱에 노출된 청소년(9.4%)도 적지 않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이모(19)양은 “손님들이 ‘예쁜이’라고 부르는 등 성희롱을 당해도 사장님은 제가 잘 웃고 밝아서 뽑은 건데 왜 웃질 않냐며 오히려 뭐라고 했다”고 말했다.

◆학교 밖·가출청소년에게 더욱 열악한 노동 현장

특히 노동 현장은 학교나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학교 밖 청소년이나 가출청소년들에게 더욱 열악하다. 주당 평균 4.87일, 1일 평균 8.22 시간을 일하는 이들에게 아르바이트는 단순한 경험이 아닌 직업과 마찬가지지만 이들은 불법이거나 노동강도가 높고, 처우가 좋지 못한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국회의원실에 따르면 2014년부터 올 6월까지 만 19세 미만 청소년 고용금지 규정을 위반해 경찰에 붙잡힌 유흥업소, 소주방, 숙박업소 등 업주는 총 805명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전문가들은 이들 대부분이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월급보다는 일당, 주당을 받는 일자리를 찾고, 친권자 동의를 받지 못해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가출청소년 최모양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과의 면담에서 불법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에 대해 “가출을 해서 (부모님) 동의서도 못 받고 거주지도 없어 안 좋은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숙식 해결이 가능한) 일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상당수 청소년 아르바이트생들이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지만 근로권익센터나 경찰과 같은 상담 및 구제 체계에 신고하는 비율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부당 행위를 당한 청소년 아르바이트생 10명 중 6명 이상(65.8%)은 어떠한 이의 제기도 하지 않고 계속 일했고, 2명꼴(21.1%)로 일을 그만두는 등 대부분의 청소년이 열악한 현실을 홀로 감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 인권’ 교육과 ‘좋은 일자리’ 공급 필요”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실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고용주와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 부족’과 ‘노동법 위반 사업주에 대한 경미한 처벌’ ‘연령 차별적인 위계적 문화’ 등을 꼽고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황진구 선임연구위원은 ‘청소년의 노동기본권 보장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청소년들은 근로조건이 명확하지 않은 근로계약, 복잡하고 어려운 법률용어로 자신들의 권리를 명확히 인지하지 못하며, 이는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고, 권리구제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며 “‘취직인허증’ 등의 법률용어를 알기 쉽게 바꾸고, 사업장에서 근로계약의 의무가 잘 이뤄지고 있는지 근로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황 위원은 “청소년들의 노동기본권 보장이라는 목표는 청소년들을 변화시키는 것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 노동시장의 고용주와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며 청소년은 물론 고용주에 대한 노동기본권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청소년의 노동을 규제하는 것보다는 안정적인 일자리에 대한 공급도 강조했다. 황 위원은 “독일과 같이 청소년들의 경쟁적 업무 투입을 제한해 위험 업무로부터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며 “가출청소년, 장애 청소년, 빈곤청소년 등 다양한 취약계층 청소년들을 ‘좋은 일자리’로 유인하기 위해 공공과 민간의 일자리 정보를 취합하여 제시해주는 통로(공공 홈페이지, 애플리케이션)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알바 청소년 되레 옥죄는 ‘친권자 동의제’

청소년이 아르바이트할 때 친권자 동의를 받도록 의무화한 법 규정이 이들을 위험한 일자리로 내몬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만 18세 미만 연소자를 고용하는 업주는 친권자나 후견인의 동의서를 사업장에 갖추어야 한다. 노동 착취와 위험 업무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규정 때문에 오히려 생활비 마련이 시급한 가출 청소년이나 취약계층 청소년들이 근로조건이 좋은 일자리가 있음에도 동의서를 받지 못해 열악한 일자리로 밀려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친권자나 후견인 등 법정대리인의 동의서를 요구하는 국가는 많지 않다. 청소년 고용 금지 업종이 법령에 규정돼 있는 이상 법정대리인 동의서 의무화는 연소자의 취업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이유에서다. 또 청소년이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임금을 청구할 수 있는 상황에서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요구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물론이고 청소년 근로자 관련 법을 잘 정비했다고 평가받는 독일이나 일본도 법정대리인의 동의서가 아닌 연령을 증명할 서류만 요구한다.

이에 따라 노동 현장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동의서 의무화 규정을 폐지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노동, 법률, 청소년 상담 등 전문가 25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현행 규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1명(4%)에 불과했다.

국회에서도 법 개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은 지난 8월 청소년이 자녀를 두고 홀로 생계를 이어가는 가장이라면 부모의 동의 없이도 직장을 구할 수 있도록 ‘청소년 한부모 생계 자립법(근로기준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