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논란'·'수입된 보물'·'흑역사'… 키워드로 풀어본 국보·보물 이야기

◆보물 2000호로 지정된 김홍도 필 삼공불환도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에는 수많은 유형문화재 중 역사적·학술적·예술적·기술적 가치가 큰 “중요한 것”이 오른다. ‘국보’는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인류문화의 관점에서 볼 때 그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이다. 한국사의 가장 뚜렷하고, 가치있는 흔적으로 평가된 보물 중의 보물이 국가지정문화재란 이름을 얻고, 가장 극진한 보호를 받는다.

‘보물 제2000호’가 나왔다. 문화재청은 4일 김홍도가 1801년에 그린 8폭 병풍 ‘김홍도 필 삼공불환도’를 보물 2000호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순조의 천연두 완쾌를 기념하여 만든 4점의 병풍 중 하나로 “백성들의 생활상으로 재해석한 김홍도 말년의 대표작으로 인물, 산수 등 여러 분야에 두루 뛰어났던 그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역작”이라고 평가했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후 보물 2000호가 나오기까지 56년의 세월이 흘렀다. 최고의 유물을 다루는 제도인 만큼 얽혀있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여러가지다.

#1호: 숭례문의 국보1호 자격 논란

◆자격 논란에 휩싸이기도 하는 국보 1호 숭례문

순차적으로 정한 번호가 앞설 수록 가치가 크다고 여길 수 있으나 관리와 행정편의를 위해 부여한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는 건 아니다. 그러나 1호의 경우엔 상징성이 큰 게 사실이다. 국보 1호는 숭례문이고, 보물 1호는 흥인지문이다.

국보 1호인 숭례문을 두고는 자격 논란이 이어졌다. 수도의 정문이자 조선 건축술의 총화인 숭례문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의해 조선 고적 1호로 지정됐고,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면서 국보 1호의 타이틀을 얻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한양으로 입성한 문이어서 일제가 숭례문을 고적 1호로 정했다는 의견이 있어 정통성 시비에 종종 휘말렸다. 2008년 발생한 화재로 문루의 상당 부분이 소실된 것도 시비의 빌미가 됐다.

숭례문을 대신할 국보 1호로 거론되는 것이 훈민정음(국보 70호)이다. 문화재계 내부에서도 교체 필요성에 공감하는 의견이 적지 않고, 정치권에서도 논의된 적이 있긴 하지만 구체적인 진전은 없었다.

#그리스 투구와 오구라 컬렉션:수입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904호로 지정된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

외국에서 제작된 유물이 한국으로 건너와 국가지정문화재가 되어 대접을 받는 경우도 있다.

1936년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 경기대회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한 기념으로 받은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보물 904호)가 대표적이다. 서기전 6세기경 그리스의 코린트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1875년 독일의 고고학자에 의해 올림피아에서 발굴되었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의 부상이었는데 손기정에게 전달되지 않고, 베를린 박물관에 보관됐던 것을 그리스의 한 신문사 주선으로 우리나라에 돌아왔다. 청동 투구 외에 서방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 624호 ‘황남대총 북분 유리잔’. 동양에서 확인된 적이 없는 형태의 보물 635호 ‘경주 계림로 보검’, 일제강점기에 중국에서 건너온 보물 393호 ‘전등사 철종’ 등 10건의 ‘수입산’ 국가지정문화재가 있다.

반대로 외국에서 그 나라 정부의 관리를 받는 우리나라 문화재도 있다. 특정 문화재를 정해 정부가 관리하는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가 많지는 않은데, 일본이 ‘중요문화재’, ‘중요미술품’ 등의 명칭으로 우리와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일제의 대표적인 문화재 약탈 사례로 꼽히는 도쿄국립박물관 소장의 ‘오구라 컬렉션’ 중에 이런 유물이 많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2014년 발간한 ‘오구라 컬렉션,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따르면 8건이 중요문화재에, 31건이 중요미술품으로 지정돼 있다. 중요문화재인 ‘금동투조관모’는 경남 창녕에서 출토된 6세기 전반의 유물이다. 중요미술품 중 하나인 ‘견갑형동기’는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사례가 전하지 않는 독특한 유물이다. 오구라 컬렉션은 모두 1100건의 유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1030건이 한국 유물이다.

#영구결번: 흑역사로 남은 국보 조작 사건

◆국보 274호였으나 가짜로 판명돼 지정해제된 귀함별황자총통

국가지정문화재 역사에서 1996년 8월 ‘귀함별황자총통’을 국보 274호에서 해제한 것은 뚜렷한 흑역사로 남아 있다.

1992년 해군의 이충무공 해전유물발굴단이 거북선에 장착한 대포를 인양했다고 발표했다. 워낙에 귀한 유물이다 보니 지정을 위한 긴급문화재위원회가 며칠 만에 열렸다. 결과는 만장일치 국보 지정. 그러나 4년 뒤인 1996년 검찰에서 조사를 받던 한 수산업자가 이 총통이 조작된 것임을 밝혀 난리가 벌어졌다. 수사결과 총통은 1987년 제작됐고, 1년간 화공약품을 부어 강제 부식시켰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같은 해 총통은 국보에서 지정해제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지정예고제’가 도입됐다. 국보, 보물 지정 전에 일정한 기간동안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절차다. 지정해제된 국보, 보물은 해당 관리번호가 영구결번이 돼 지금도 국보에는 274호가 없다.

국보의 또 다른 영구결번은 278호다. 조선 태종이 이형이라는 인물에게 내린 ‘이형 원종공신녹권’이 278호로 지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후일 비슷한 성격이지만 시기가 앞서는 등 문화재적 가치가 보다 큰 ‘마천목 좌명공신녹권’이 국가지정문화재가 되면서 국보에서 보물로 내려 앉았다.

보물에는 영구결번이 국보보다 많은 데 화재로 훼손된 것이 적지 않다. 2005년 4월 발생한 화재로 479호 낙산사 동종이 녹아버렸고, 458호이던 경남 하동 쌍계사 적묵당도 1968년 2월 불에 타 사라졌다. 1986년 12월에는 김제 금산사에서 일어난 화재로 대적광전이 476호의 지위를 잃었다.

#무관의 제왕: 뒤늦게 지정된 대어급 문화재들

◆지난 2월 보물로 지정된 신윤복의 미인도

지난 2일 국립경주박물관 소장의 ‘경주 얼굴 무늬수막새’가 보물로 지정예고 됐다. ‘신라의 미소’라 불리며 교과서에 등장할 정도로 한국 기와를 대표하는 이 유물이 보물이 된다는 소식에 “이제야…”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그간에는 ‘무관의 제왕’으로 사랑을 받아 왔던 것이다. 신윤복의 ‘미인도’(보물 1973호)도 이런 문화재다. “19세기의 미인도의 전형”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 그림 역시 얼굴무늬 수막새에 못지않은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작품성을 일찍부터 인정받았지만 보물로 지정된 것은 올해 2월이었다.

국가지정문화재가 아니라는 것이 이상할 정도의 유물이 적지 않은 것은 제도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문화재 지정은 기본적으로 문화재를 제도권 안으로 수용해 보존,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국립박물관이나 유수 사립박물관 등의 소장품은 굳이 지정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관리를 받기 마련이다. 이런 이유로 지정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소장처, 소장자가 문화재청의 간섭을 받기 꺼려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국가지정문화재가 되면 별도의 정부 지원을 받지만 장소 이동, 보존처리 등에서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