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10-06 07:40:00
기사수정 2018-10-05 20:05:27
2018년 지구촌 최대 화제 중 하나가 남북화해 무드다. 세계인들은 남과북이 마주 앉아 이야기 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보고 있다.
남과북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분단된 아픔(1945년 이해 73년)을 갖고 있지만 '우리는 하나다'라는 뜻만은 변하지 않았고 만나서 이야기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다.
이는 하나의 언어, 하나의 글을 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 국토분단보다 더 무서운 언어분단
하나라는 인식은 공간을 함께 사용하거나 같은 국적이라는 점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같은 정서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서는 같은 말, 같은 글을 사용해야 함께 갖고 나눌 수 있다.
얼굴 생김새가 우리와 같더라도 우리말과 글을 이해 못한다면 '우리'가 아니다.
이런 면에서 같은 글, 언어는 매우 중요하다.
남과북은 지형적, 역사적 이유로 강대국들 영향을 끊임없이 받아 왔다. 그런 까닭에 만약 '한글'이라는 같은 글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70여년 세월동안 언어는 조금씩 달라져 남아닌 남이 됐을 것이다.
▲ '한글'이라 부른 주시경과 제자들, 우리 정서가 일본화 되는 것 죽음으로 막아
오는 9일은 한글날이다. 세종대왕은 어려운 한자를 모르는 백성이 자신의 뜻을 오래 간직하고 떨어진 사람들에게 전하기 어려운 점을 안타깝게 여겨 한글을 만들었다.
처음부터 한글은 백성들의 글, 우리를 하나로 연결하는 도구임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세종대왕 정신을 이어 받은 이가 한힌샘 주시경 선생(1876~1914· 사진)이다. 훈민정음에게 '한글'이라고 새이름을 달아 준 주시경 선생은 38살의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지만 그의 제자들이 스승의 뜻을 받들어 한글을 갈고 닦고 지켰다.
주시경 제자들은 조선어학회를 만들어 일본의 억압에 굴하지 않고 우리글을 지키고 보급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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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9년 6월 12일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이들이 모여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뒷줄 왼쪽부터 민영욱, 임형규, 정인승, 정태진, 이석린. 가운데 줄 왼쪽부터 김선기, 백낙준, 장현식, 이병기, 정열모, 방종현, 김법린, 권승욱, 이강래. 앞줄 왼쪽부터 김윤경, 정세권, 안재홍, 최현배, 이중화, 장지영, 김양수, 신윤국 선생. 사진=한글학회 |
일본은 우리 글과 말을 없애야 완전한 통합이 가능하다며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을 만들어 33명의 한글학자를 체포했다. 이 중 최현배· 이극로·이윤재·이희승·정인승·정태진·김양수·김도연·이우식·이중화·김법린·이인·한징·정열모·장지영·장현식 등 16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극로, 한징 선생이 옥에서 숨지고 최현배 선생 등은 광복을 맞아서야 감옥에서 나왔다.
▲ 남에선 최현배, 북에선 김두봉이 한글 뼈대 그대로 유지
주시경의 제자 모두 이른바 강골(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음)이다. 그들 중 대표격이 최현배, 김두봉으로 모두 한글에 목숨을 걸었고 한글전용을 일생의 목표로 삼아 뛰었다.
1945년 남과 북으로 땅덩어리가 갈라진 뒤 외솔 최현배(1894~1970· 왼쪽)선생은 남쪽에서 교과서 편찬 책임을 맡았다. 백연 김두봉(1889~1960· 오른쪽)은 북한에서 연안파의 핵심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북한 글과 언어정책을 좌지우지했다.
최현배 선생은 국한문 혼용 주장에 끝까지 반대, 한글전용정책을 밀고 나갔다. 북한은 정권초기부터 한글만을 표현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김두봉이 북으로 가면서 "최현배가 남쪽에 있기에 안심이 된다"며 미 군정하에서 혹시나 우리글이 퇴색될 염려, 한문이 한글을 밀어내는 염려를 놓았다고 한다.
최현배 선생의 제자들은 한글학회를 중심으로 지금까지 한글 전용론을 줄기차게 외치고 있다.
김두봉은 1950년대 중반 정권 싸움에서 밀려(연안파 숙청) 사라졌지만 주시경과 조선어학회가 만든 '한글 맞춤법 통일안'(사진)만은 지켜냈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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