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피해자 돕는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아시나요

전국 59곳 정부 ‘보완재’ 역할 / “대기업·지자체, 보다 관심을”
#1. 지난해 3월 인천에서 초등학교 2학년이던 A(사망 당시 8세)양이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일명 ‘인천 초등생 살해 사건’이다.

비영리 민간 단체인 인천범죄피해자지원센터(범피센터) 측은 A양 장례식장을 찾아 유가족을 만나고 경찰, 지자체 등과 지원 대책을 논의했다. 유관 기관들과 연계해 범죄 피해 구조금과 생계비, 주거 이전비 등을 지원하는 한편, 범죄 피해 트라우마 통합 지원 기관인 스마일센터에서 심리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했다.

1년여가 흐른 지금, 유가족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한다. A양 아버지는 사건의 충격을 딛고 직장에 복귀했다.

#2. 그로부터 3년 전 경북 경주에서 대형 참사가 있었다.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 사고다. 당시 부산외대 신입생 환영회가 열리던 체육관 지붕이 무너져 10명이 사망하고 20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지붕 덮개와 이를 받치는 중도리가 제대로 결합되지 않아 빚어진 범죄였다. 유가족들은 아직도 경주범피센터에서 심리 상담을 받는다.

범죄는 이처럼 피해 당사자와 가족의 삶은 물론, 때로는 공동체까지 송두리째 뒤흔든다. 범죄 피해 회복이 쉽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국범죄피해자지원연합회 홈페이지 캡처.

◆경제적 지원 ‘절실’…지속 관리도 중요

7일 전국범죄피해자지원연합회(KCVA·회장 김갑식)에 따르면 범죄 피해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경제적 지원이다. 충격으로 대부분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는데다 저소득층이 범죄에 취약해서다.

김지한 전국범죄피해자지원연합회 사무국장은 “범죄 피해자에게 어떤 지원을 한다고 해서 사건 이전으로 바로 돌아갈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센터별로 피해자들의 기대나 욕구에 부응하려 노력하는데 맞춤형으로 지원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전국의 59개 범피센터를 아우르는 연합회는 2008년 9월3일 문을 열었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전국 각지의 센터들은 그간 연합회를 주축으로 정부 지원 제도의 ‘보완재’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범죄피해자보호법상 정부의 범죄 피해 구조금은 사망·장해·중상해에 대해서만 지원이 가능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센터들은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심리 상담과 주거 환경 개선, 수사 기관 동행 등 신변 보호를 비롯해 다양한 지원을 제공한다. 전국 59곳에서 임직원 1045명이 열악한 처우와 과중한 업무 등에 시달리면서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 센터는 지난해 △상담 7만1346건 △경제 지원 1만34건 △법률 지원 9360건 △의료 지원 4723건 등 총 83억5500여만원을 지원했다. 전체 예산에서 국고·지자체 보조금을 제외하고 40% 정도는 기부금과 회원 회비로 충당한다.

범죄 피해자들에게는 이들 센터를 통한 지속적인 관리와 지원이 중요하다. 범죄 피해 트라우마 때문이다.

2016년 3월 경북 포항에서 20대 남성이 여자 친구를 칼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헤어지자”고 했다는 이유였다. 피해자는 아들을 둔 미혼모 친구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 친구도 목숨을 잃었다.

당시 6세에 불과했던 아이는 사건 현장에서 발견돼 아동 보호 시설인 해바라기센터로 옮겨진 뒤 심각한 트라우마 증상을 보였다. 자기 이름을 말하지 못하고 미술 치료 과정에서 빨간색으로 피를 그리는가 하면, 엄마가 죽었다는 걸 알면서도 “엄마가 오면 알려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포항범피센터는 아이의 이모가 아이 후견인이 될 수 있게 도우는 한편, 후견 감독인을 자청하고 나섰다.

지난해 9월 경북 상주에서는 혼자 살던 3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이 여성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연락이 닿지 않자 그의 집을 찾았다가 인기척이 없자 발길을 돌렸다. 이틀 넘게 연락이 두절되고 주차장에 차가 있는 점을 미심쩍게 여긴 어머니의 112 신고로 피를 흘린 채 숨진 피해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용의자는 범행 당일 밤 이미 태국으로 출국한 상태였다.

피해자 어머니는 심각한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딸의 살인 사건이 떠올라 밤이면 악몽을 꾸며 불안을 호소했다. 작은딸이 외출하면 불안해 전화로 수차례 안부를 확인했다. 숨진 큰딸에 대한 죄책감도 있었다.

피해자 어머니는 상주·문경·예천범피센터와 스마일센터에서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차츰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피해자들, 도움받고 일상 복귀…재원 확보 관건

범죄가 발생한 공동체가 집단 트라우마에 빠지기도 한다. 지난해 4월 일가족 자살 사건이 일어난 경북 안동의 한 면이 그런 경우다.

당시 40대 남성이 집에 연탄불을 피워 어머니와 형, 누나, 딸이 목숨을 잃었다. 해당 마을 주민들은 심각한 불안과 우울감에 휩싸였다. 경북북부범피센터는 공동체가 와해될 위험이 있다고 보고 주민들을 상대로 독서 등을 통한 심리 치료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범피센터의 도움을 받고 일상으로 건강하게 복귀한 사례도 많다. 중학교 3학년 때 친구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고 자살을 시도했던 B양이 대표적이다. B양은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한 아동복지센터 교사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해 출산에 낙태까지 한 C양도 최근 다른 학교로 전학해 적응 중이다.

국내에서 범죄 피해를 당한 외국인이 지원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2013년 대전의 마사지 업소에서 일하던 태국 여성이 업소를 찾은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가 전치 3주의 상해를 입은 사건이 단적인 사례다. 피해자는 고국으로 돌아간 뒤 재판에 증인으로 서야 했는데 생계가 어려워 한국에 오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에 담당 검사는 대전범피센터에 왕복 항공권과 체류 비용, 법정 동행 지원을 요청했고, 범피센터 도움으로 피해자는 법정 증언을 할 수 있었다.

김지한 사무국장은 “범죄 피해자들을 다방면으로 지원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충분히 확보하려면 대기업과 지자체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면서 “피해자들이 직업 훈련 등을 거쳐 취업하거나 창업해 자활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