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산의마음을여는시] 혼자 가는 먼 집

허수경
당신 ……,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갈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원은희
허수경 시인이 지난 3일 혼자 먼 집으로 갔다.

30대 후반에 당신의 시집 ‘혼자 가는 먼 집’을 읽고 나에게 절망을 안겨준 당신. 20대인 당신처럼 시를 쓸 수 없겠다는 생각에 나는 시인의 길을 접었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당신을 불러본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간 당신.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세월을 지낸 당신.

말기 암으로 독일에서 달을 바라보며 ‘달은 내 속에 든 통증을 다 삼키고 다시 그 달을 꿀꺽 삼키면 통증이 오고 통증은 빛 같다. 그 빛은 아스피린 가루 같다. 이렇게 기쁜 적이 없었다’라고 한 당신.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당신에게 뮌스터 나무 아래 술 한 잔 올릴 터이니 백수광부처럼 이제 문자도 없이 문서도 없이, 멸(滅)조차 적적한 곳으로,

화엄도 도솔도 없이 문명의 바깥으로, 무망(無望) 속으로 환하게 가시길.

박미산 시인·서울디지털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