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갈등격화 속 가까워지는 北·中·러… 北비핵화 변수로

한반도 주변 외교전 갈수록 치열 / 북·미 본격 핵담판 재개 상황서 / G2 무역마찰 놓고 가시 돋친 설전 / WSJ “북·미 회담 꼬일 위험 커” / 시진핑, G20 前 내달 방북 가능성 / 김정은 조만간 러시아 방문도 촉각 / 전략적 이해 맞물려 ‘공동전선’ 북한 방문 이후 중국을 찾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8일 베이징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8일 만나 공개적으로 가시 돋친 설전을 벌였다. 미국과 북한이 본격적인 핵 담판을 재개한 상황에서 미·중 양국 간 갈등이 폭발함으로써 이것이 북핵 문제의 향방을 가르는 또 하나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세계 최대 경제대국 간 관계 악화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정상회담이 복잡하게 꼬일 위험성이 커졌다”고 전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악화일로다. 미·중 간 무역전쟁이 날로 격렬해지고 있으나 양측 간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미·중 간 군사회담도 중단됐고, 남중국해에서는 미·중 양국의 전함이 충돌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최근 중국이 미국의 선거에 개입하는 등 미국의 이익을 중대히 침해하고 있다고 중국을 비난하면서 대중 포용 정책 대신에 압박·대결 전략을 동원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왕 국무위원은 베이징에서 폼페이오 장관에게 “미국이 잘못된 행동을 즉각 멈춰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금수물품 차종으로 전용차 바꾼 김정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7일 평양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영접할 당시 김 위원장이 ‘롤스로이스 팬텀’으로 보이는 차를 타고 백화원 영빈관을 찾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미 CNN방송이 9일 보도했다. 미 국무부가 제공한 사진을 보면 김 위원장 뒤로 보이는 검은색 차 바퀴의 알루미늄 휠에 롤스로이스 고유 문양인 ‘R’ 로고(붉은 원)를 확인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전용차로 북·미 정상회담 때 공개된 벤츠 S600 풀먼 가드 리무진 대신 롤스로이스 팬텀이 목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6년부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의해 대북 금수품목으로 지정돼 있다. 그래서 롤스로이스 팬텀이 어떻게 국제적인 대북제재망을 뚫고 김정은 손에 들어갔는지 궁금증이 일고 있다. 작은 사진은 롤스로이스 팬텀의 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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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중국과 대결하면서도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해 핵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압박하라고 주문한다. 대니얼 러셀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WSJ에 “트럼프 정부의 대결 노선으로 인해 중국이 대북 정책을 놓고 미국과 공동의 목표를 추구할 가능성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WSJ는 “미국과 중국이 동북아 안정과 북한 비핵화를 바라고 있지만 이를 실현하는 방법을 놓고 입장차를 드러내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정부는 북핵 문제를 속전속결로 해결하려 들지만, 중국은 단계적 비핵화를 선호하고 있다고 이 신문이 지적했다. 미·중 양국은 특히 북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제재 유지 문제로 대립해왔다.

미·중 대결 속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과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추진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미국과 협상에 나서면서 북한의 전통적 우방국인 중국과 러시아를 북한 편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왕 국무위원은 폼페이오 장관에게 북한과 같은 민감한 문제를 다루려면 미·중 관계가 건강하고 안정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WSJ는 “왕 국무위원의 발언은 중국이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경고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북·중·러 3국 간 관계 강화는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러시아와의 전략적 이해관계에도 부합한다. 특히 미국과 전방위적 갈등 상황을 빚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북한을 지렛대로 한 대미 압박이 유효한 반격 수단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가시화된 가운데 북한 조선중앙TV가 2002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극동지역 방문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지난 7일 방영했다. 김 국방위원장은 2001년, 2002년, 2011년 3차례 모스크바와 극동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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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석의 연내 방북도 중국의 전략적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중요 카드다. 미·중 간 잇따른 고위급 대화 무산에도 폼페이오 장관의 방중이 성사된 것은 미국이 북 비핵화 프로세스에서 중국 측 협력의 불가피성을 인정한 것으로 분석된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시 주석의 방북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끝나고, 11월30일 아르헨티나에서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가 열리기 전인 다음 달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중국 최고위급 방문은 2005년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 방문 후 13년 만으로, 이후 악화일로를 걸었던 북·중 관계가 회복됐다는 확인이다.

김 위원장의 방러도 동북아 정세 변화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에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러시아로선 김 위원장의 방러가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중요한 명분이 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이 방러 하면 북한 최고지도자의 러시아 방문이 2011년 이후 7년 만이다. 김 위원장은 기차보다는 싱가포르 이동 때와 마찬가지로 항공편을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첫 방러인 만큼 수도 모스크바와 양국 경제협력의 상징인 극동지역을 찾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워싱턴·베이징=국기연·이우승 특파원, 김예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