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10-16 15:23:39
기사수정 2018-10-16 15:23:38
강간죄 대신 형량 낮은 성추행죄로 기소 ‘아쉬움’
|
1998년 일어난 대구 여대생 성폭행사건 진범으로 지목된 스리랑카인 K씨(가운데)씨가 대법원의 무죄 확정 판결 직후인 지난해 7월 스리랑카로 강제추방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20년 전인 1998년 발생한 대구 여대생 사망사건 주범인 스리랑카인 K(51)씨가 한국 대신 스리랑카 법정에 선다. 국내에선 공소시효 만료로 형사처벌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한국 법무부의 기소 요청을 받아들인 스리랑카 검찰이 K씨를 기소했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스리랑카 형사법에 따른 공소시효 만료를 나흘 앞둔 지난 12일 스리랑카 검찰이 K씨를 성추행 등 혐의로 콜롬보 고등법원에 기소했다고 16일 밝혔다.
◆15년 만의 기소… 국내 법원에선 ‘무죄’ 확정
이 사건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구시 구마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여대생(당시 18세)의 속옷에서 남성 정액 유전자(DNA)가 확인됐다. 피해자가 교통사고 이전에 성폭력범죄를 당한 것으로 의심되었으나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15년 만인 2013년 스리랑카 국적자 K씨의 DNA가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나 검찰이 우리 법원에 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특수강간 및 강간 등 공소시효가 모두 완성돼 부득이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죄로 K씨를 기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K씨의 강도 혐의에 대해선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고, 강간 혐의에 대해선 공소시효 완성을 이유로 면소 판결을 선고했다.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된 직후인 지난해 7월 K씨는 고국 스리랑카로 강제 추방됐다.
◆법무부, 스리랑카 정부에 "강력한 처벌" 부탁
국민 법감정이 들끓었다. 한국 여성을 성폭행해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외국인을 그냥 풀어줘선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없다는 것이다. K씨의 처벌 방안을 강구하던 법무부는 대구지검과 협의해 지난해 8월 스리랑카 당국에 K씨의 강간 등 혐의에 대한 수사 및 기소를 요청했다. 스리랑카는 살인·반역죄 외에는 모든 범죄 공소시효가 20년으로 그 안에 K씨를 재판에 넘기면 단죄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스리랑카는 우리나라와 형사사법공조 조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아 공조 거절도 가능했다. 이에 법무부는 2회의 스리랑카 방문 협의, 1000쪽에 달하는 증거서류 번역본 제출, 이메일·전화 등을 통한 수시 협의를 통해 스리랑카 정부를 설득했다. 스리랑카 정부도 수사팀을 한국에 보내 다수의 참고인 조사를 실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강간 대신 성추행죄로 기소… 징역 5년 ‘상한’
최종 기소 결정 단계에서 법무부는 증거 설명 이외에 유족 및 국민 법감정 등을 강조하며 K씨를 강간죄로 기소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스리랑카 검찰은 K씨의 DNA가 피해자의 몸이 아닌 속옷에서 발견된 점, 강압적 성행위를 인정할 추가 증거가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강간죄 대신 성추행죄로 기소했다.
스리랑카 형법상 성추행죄(Sexual Harassment)는 추행, 성희롱 등 성적으로 괴롭히는 행위를 폭넓게 처벌한다. 법정형은 5년 이하의 징역형이다.
이 사안은 지난 2006년 스리랑카 형법 개정으로 스리랑카인이 스리랑카 밖 외국에서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한 형사재판 관할권을 인정한 후 스리랑카에서 국외범을 수사·기소한 최초 사안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향후 공판 과정에서도 스리랑카 검찰과 협조해 주범 K씨에게 중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