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경찰이 서울 강서구 PC방 알바생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29·사진)씨의 신상을 공개한 것은 무엇보다 여론의 압박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은 처음에는 단순하고 우발적인 살인사건으로 보였지만, SNS를 중심으로 경찰의 미흡한 대응을 지적하는 글이 올라오면서 논란이 더욱 확산됐다.
잔혹한 범행 내용이 알려지며 SNS에서는 피의자에 대한 신상공개는 물론, 엄벌을 촉구하는 여론이 빗발쳤다.
그동안 경찰은 흉악범의 모습을 공개할 때 모자나 마스크를 씌우거나, 점퍼를 머리에 덮어 얼굴을 가려주곤 했다. 무죄추정의 원칙과 초상권 침해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2009년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을 계기로 경찰은 관련 법령을 정비했다. 경찰이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법적 근거는 2010년 신설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8조 2항이다.
이 법에는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 강력범죄의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얼굴을 공개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국민의 알 권리 보장, 피의자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꼭 필요한 경우 공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경찰은 신상공개 심의위원회를 열어 공개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각 지방경찰청에 꾸려지는 신상공개 심의위원회는 총 7명으로 구성되며, 이 가운데 4명 이상은 외부전문가로 위촉된다.
◆'강서 PC방 살인 사건' 피의자 얼굴 공개…일부 단체 "인권 침해 우려"
흉악범 얼굴 공개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법원 확정판결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 수사단계부터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인권 침해 요소가 있다”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신상 공개 결정 주체인 경찰도 이런 점을 어느 정도는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신상공개가 결정됐다고 해서 경찰이 언론에 사진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피의자가 언론에 노출될 때 얼굴을 가리지 않는 소극적인 방식으로 얼굴을 공개한다.
신상 공개가 결정된 김씨는 지난 14일 강서구 한 PC방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신모(21)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김씨는 피해자의 얼굴과 목 부위를 수십 차례 찌르는 등 잔인한 수법으로 범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를 치료했던 의사가 SNS에 이런 사실을 공개하면서 사회적 공분은 커졌지만, 정작 해당 의사는 의사윤리를 위반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현장 폐쇄회로(CC)TV에 김씨 동생이 알바생의 팔을 붙잡는 등 범행을 도왔다는 의혹과 함께 동생을 공범으로 입건하지 않은 경찰의 대응을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경찰은 전체 CCTV 화면, 목격자 진술 등을 종합적으로 살폈을 때 동생이 범행을 공모했거나 방조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수사 과정에서 김씨가 경찰에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이 약해져서는 안된다는 청원 글이 현재 90만 여건 올라왔다.
◆경찰 "피의자가 중국동포? 사실 아냐"…'제노포비아' 확산 우려
김씨는 22일 정신감정을 받기 위해 치료감호소로 옮겨졌다. 그는 충남 공주 반포면의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로 이송, 길게는 1개월 동안 정신감정을 받을 예정이다.
사건이 발생한 PC방에는 피해 알바생을 추모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PC방 앞에 놓인 테이블은 추모글이 적힌 포스트잇으로 가득 채워졌고, 국화꽃과 함께 편지도 놓여 있었다.
포스트잇에는 "너같이 착한 아이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고 피해자를 그리워하는 글, "당신의 한이 풀리길 바라며, 범죄자가 부디 엄격하게 처벌되길 기도한다"며 엄벌을 촉구하는 글 등이 적혀있었다.
한때 김씨와 그의 동생이 중국동포라는 설이 있었지만, 이들 형제 모두 한국 국적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특별한 직업이 없었으며, 동생은 아버지와 함께 전국 곳곳의 건설 현장을 다니며 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언젠가부터 이 사건 피의자가 중국동포라고 주장하는 글이 급속도로 확산돼 관련 기사마다 '조선족' 운운하는 댓글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경찰은 난데없는 중국동포설이 퍼진 것에 대해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입장이며, 경찰 측에서 그 같은 얘기가 나간 것은 아니라고 황당해하는 모습이다.
이런 근거없는 소문이 한때 사실인 것처럼 비춰지며 "외국인 노동자나 난민 문제와 겹쳐 정부와 언론이 의도적으로 피의자 신상을 공개하지 않고 사건을 축소 및 은폐하고 있다"는 의혹으로 불거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소문은 낭설인 것으로 밝혀졌지만, 우리 사회 일각의 '제노포비아(Xenophobia·외국인 혐오증)' 현상의 한 단면을 드러낸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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