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현대미술이 난해하다구요?

작품을 잘 몰라 질문하는 건 당연 / 회피적 태도는 지적 성장 막는 일 / 전시회는 앎의 즐거움 선사할 것 / 또 다른 세계를 만나 힐링해 보자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현대미술이 유독 그렇다. 작품을 마주할 때마다 난해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만큼 아는 게 없다는 얘기다. 무지의 속살이 드러난 것이다. 현대미술 작품들은 한번 쓱 보고 지나가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축적한 경험이나 매우 단련된 감각을 넘어선, 몹시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을 당당히 요구한다.

방글라데시 작가 뮈넴 와시프의 작품 ‘씨앗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짙푸른 바탕에 볍씨 몇 알을 흩뿌려 놓은 게 전부다. 파란색은 아이러니한 색이다. 우울과 외로움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희망을 상징하기도 하고, 차가운 느낌을 안기지만 바라보고 있으면 심신이 편안해지는 따뜻함을 지녔다. 상실감을 느낄 때 찾게 되는데, 정작 마주하면 마음 한켠에서부터 무언가 채워지는 치유의 기능도 한다. 여기에 쌀알들이 있으니 생명이나 순환 등을 말하는 것이리라 넘겨짚을 법하다. 
김신성 문화체육부장

하지만 작품 속 청색은 ‘인디고’를 의미한다. 쪽 또는 남(藍)이라 하여 사용되어 온 식물계의 천연염료다. 블루진(청바지)을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19세기 영국 동인도회사는 3계절 수확이 가능한 벵골지역의 쌀 경작을 전면 금지한 뒤 인디고 재배를 강제로 확대했다. 이는 결국 대규모 기아를 불러 수많은 희생자를 낳는다. 슬픈 사연을 품은 작품이다. 식민지 역사와 방글라데시 국민의 기억에 대해 고찰하는 작가는 상처와 치유, 회복을 상징하는 볍씨로 정신과 문화를 강조한다. 쌀은 그에게 수확의 신이자 상서로운 의식의 고갱이다.

국내에도 알려진 태국의 영화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은 폐건물에 설치작품 ‘별자리’를 수놓았다. 페인트칠은 너덜거리고, 창들은 성한 데가 없다. 넝쿨들이 건물을 마음대로 휘감았다. 내부에는 먼지를 뒤집어쓴 잔해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블루투스 장치에 의해 스스로 움직이는 당구공들, 희미하게 깜빡이는 전구, 깨진 창을 통해 보이는 흑백 영상 등은 그의 작품을 구성하는 별들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본 것만 같은 초현실적 분위기 연출은 그의 주특기다. 봄과 보지 않음, 사실과 허구, 공간과 공허함을 오간다. 그의 사색적 작품세계는 개인의 경험과 기억, 역사, 전설, 사회현상 및 정치적 격변까지 아우른다.

쿠바 작가 요안 카포테가 만든 ‘방파제’는 7개의 콘크리트 벽과 어른 손가락 굵기의 낚싯바늘 수천개로 바다의 장엄함을 담아낸 기념비적 작품이다. 출렁이는 검은 바다와 수면 위 반사되는 찬란한 빛이 매우 인상적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검은 낚싯바늘들이 바다의 음영이고 반사된 빛은 사실 콘크리트 벽이다. 1962년 이후 강력한 이웃국가 미국의 제재에 의해 고립상태로 존재해온 쿠바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가공되지 않은 거친 콘크리트를 사용해 오늘날까지 쿠바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지닌 냉전시대 건축물을 재현해 냈다.

이들 작품을 광주비엔날레에 가면 만날 수 있다. 43개국 165명 작가의 다채롭고 빼어난 작품 300여점이 기꺼이 반겨준다. 다음달 11일까지다. 세 번의 주말밖에 남지 않았다. 일정을 챙겨봐야 한다.

현대미술에선 전문가도 모르는 게 많다. 난해한 것은 물어보는 게 당연하다. 창피한 일이 아니다. 모르면서도 회피하는 것이야말로 본인의 성장을 방치하는 일이다. 전시장 곳곳의 작품 해설자 도슨트를 적극 활용하길 권장한다. 휴대폰으로 QR를 담아 오디오가이드로 작품해설을 듣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전시회나 박물관을 찾는 이유는 지켜보는 활동만으로도 앎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며 이를 즐기기 위해서다. 너머를 통한 새로운 배움과 성찰. ‘난해한’ 현대미술이야말로 시야를 넓혀주는 조력자다.

전시회는 한순간에 커다란 일깨움을 전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학습과 달리 고단함과 고통이 따르지 않는다. 배우고 습득하는 과정이 오히려 즐겁다. 예술의 힘이다.

‘30cm 자’로는 세상을 잴 수 없다. 스스로 그은 경계를 넘어 나를 둘러싼 또 하나의 세계와 만나야 한다. 직접 보고 느끼고 채우며 힐링하시라.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이다.

김신성 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