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10-25 19:23:33
기사수정 2018-10-25 19:23:33
온라인 커뮤니티 부작용 확산 / 보육교사 투신 부른 김포 맘카페 / 자성은커녕 첫 게시자 신상 털어 / 휴대폰·블랙박스 통한 촬영 쉬워 / 사실관계 확인 없이 무차별 유포 / 특정인 겨냥 무분별한 감시활동 /“정의 내세운 약자 통제 경계해야”
지난 13일 아동학대 가해자로 지목된 경기도 김포의 한 어린이집 교사가 아파트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교사는 이른바 ‘맘카페’ 회원들의 과도한 신상털이와 비난을 겪은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 자성의 목소리는 잠시였을 뿐 맘카페에선 다시 사건 발단이 된 게시물 작성자에 대한 신상털이가 시작됐다. 어린이집 원생의 이모로 알려진 글쓴이의 신상정보는 현재 맘카페와 커뮤니티 등에서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타인을 향한 감시활동이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다. 건전한 ‘감시’가 아니라 특정인의 신상정보나 사진, 영상 등을 공유하면서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확산시키는 ‘폭로’ 성격이 더 짙다. “새로운 감시사회가 도래했다”는 분석이 제기되는 가운데 거대 온라인 커뮤니티가 일종의 ‘빅브러더’로 변질하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크다.
25일 맘카페 등 몇몇 커뮤니티를 확인해봤더니 ‘김포맘카페’ 사건 발단이 된 글의 최초 게시자 신상정보가 여기저기 올려져 있었다. 포털사이트 아이디, 카페 닉네임, 거주지 같은 민감한 정보가 여과 없이 노출돼 있다. 경찰이 신상정보 유포자 수사에 착수했는데도 막무가내다.
스마트폰이나 블랙박스 등 휴대용 촬영기기 사용이 늘면서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감시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런 영상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하는 것은 사실상 ‘몰카’(몰래카메라)의 범주에 들지만 커뮤니티에선 거리낌 없이 용인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공덕역 인근에서 택배기사가 한 남성을 폭행하는 영상이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경찰이 영상을 분석하는 등 수사에 나서는 사이 커뮤니티에서는 영상을 근거로 택배기사 신상털이가 시작됐다. 아무리 영상을 통해 폭행을 고발하거나 경각심을 주려는 좋은 취지였다고 하더라도 유포행위는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 커뮤니티에 특정 사건이나 사고를 폭로하기 전에 폭로 방식의 적법성도 고려해봐야 하는 이유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26단독에서는 건물주의 갑질 횡포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박모(24)씨가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벌금 30만원을 선고받기도 했다.
커뮤니티의 감시활동에 따른 부작용은 해마다 되풀이된다. 지난해 9월 ‘240번 시내버스 사건’과 2012년 ‘채선당 사건’이 대표적이다. 둘 다 해당 버스기사와 식당 종업원을 비난하는 글이 커뮤니티에 올라와 엄청난 논란이 일었으나 뒤늦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얼마 전 ‘곰탕집 성추행 사건’에서도 징역 6개월 판결 선고에 반발하는 일부 누리꾼이 담당 판사의 신상털이를 해 논란이 됐다.
커뮤니티의 감시활동이 사실 확인보다 의혹 확산에 치중한다는 점에서 자정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는 “정부나 국가가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감시활동을 ‘빅브러더’(big brother)라고 한다면 커뮤니티에서 누리꾼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감시활동은 일종의 ‘스몰브러더’(small brother)로 볼 수 있다”며 “정보민주주의의 발달로 기존에는 정부가 독점했던 감시 기능을 개인도 보유하면서 다른 개인을 향해 활용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표현의 자유는 약자나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또 다른 약자를 억압하는 명분으로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약자로부터 그보다 더 약한 이를 보호하기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