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10-27 11:00:00
기사수정 2018-10-27 16:18:54
‘강요된 성실 거부’ 에세이 판매 날개 / “열심히 기준조차 기성세대가 만든 것”
“인간에게 가장 해로운 벌레는 ‘대충’.”
그룹 ‘동방신기’의 멤버 유노윤호(정윤호)는 이 말로 ‘열정의 아이콘’이 됐다.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나는 열정적이다’란 뜻의 ‘#나는 유노윤호다’라는 해시태그가 유행하기도 했다. 그런 유노윤호가 지나 8월 공항에서 열정과는 거리가 먼 제목의 책을 들고 있던 장면은 적잖이 화제가 됐다. 하완 작가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책이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를 필두로 서점가에서도 ‘대충 살자’ 담론이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4월 출간된 이 책은 최근까지 베스트셀러에 오르내린다. 지금까지 9만부 이상 찍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와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도 비슷한 서적들이다. 제목만 봐도 열심히 살기를 거부하고 대충 살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이들 서적은 모두 에세이라는 공톰점을 가진다. 26일 서점가에 따르면 올해는 에세이 열풍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에세이를 찾는 이들이 많다. 다른 장르에 비해 내용이 가볍고 이해하기 쉬운 데다 SNS에서 유명세를 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충 살자 담론처럼 젊은이들의 집단 정서를 담아내기가 용이한 장르라는 점도 한 이유로 꼽힌다.
대충 살자 담론과 궤를 같이 하는 서적들은 공통적으로 ‘노력’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한때 노력을 뛰어 넘는 ‘노오력’이란 단어가 우스갯소리로 쓰일만큼 우리 사회의 ‘노력지상주의’는 공고했다. 노력은 언제나 옳은 것, 긍정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노력해도 안 된다’는 걸 깨달은 청년들을 중심으로 노력지상주의를 타파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의 출판사 서평은 “노력은 항상 정당한 결과를 가져올까?”라는 질문과 함께 시작한다. 답은 물론 “아니다”이다. 저자는 노력의 무상함을 이야기한다. 서평은 “지금 우리에겐 노력보다 용기가 더 필요한 것 같다”며 “무모하지만 도전하는 용기,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포기할 줄 아는 용기 말이다”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로 마무리된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대충 살자 담론은 노력이란 단어와 직결된다”며 “젊은 세대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기성 세대가 가진 걸 누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대충 살자 시리즈나 관련 서적들에 공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어 “따지고 보면 ‘대충’이나 ‘열심히’의 기준조차도 모두 기성 세대가 만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