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출산" 외칠 때 국민은 "비정규직" "헬조선" 외쳤다 [빅데이터로 '돌봄'을 말하다]

<3회> 정부 저출산대책 빅데이터 분석 / 3차례 기본계획 어떻게 바뀌었나/2005년 출산율 1.08명… 대책 모색/1차 정부계획 단순 출산·보육에 초점/2·3차 들어 주거·청년·일로 의제 확대
관련기사 댓글로 본 국민 체감도/3차 계획 발표 후 3만2236개 댓글 분석/10위권 내 돈·일자리·힘들다·노예 포진/세금·집값 등 경제적 고통 호소 대부분
올해 ‘출산율 1명 미만’ 우려 높아/ 인구 감소 1차적 대응에 급급했던 정부/“근본적 불균형 개선할 거시 대책 시급”/ 기존 3차 계획 ‘재구조화’ 작업 들어가
1983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2.06이었다. 인구가 증가하지도 감소하지도 않는 인구 대체 수준의 출산율(2.0)에 근접했다. 심각한 저출산의 전조였다. 정부 정책은 거꾸로였다. 그해 총인구가 4000만명을 돌파할 것만 걱정해 인구억제 정책 기조를 유지했다. 이후 하락을 거듭한 끝에 2005년 합계출산율은 1.08로 반 토막 났다. 정부가 2005년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법’을 제정하고, 2006년부터 5년 단위의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하게 된 배경이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났지만 저출산과 관련한 국가적 위기 상황은 호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05로 더 떨어졌다. 연간 출생아 숫자는 35만명까지 곤두박질쳤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세계일보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지금까지 나온 3차례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과 최근 여론의 향방을 살펴봤다.

◆출산→여성→청년, 결혼→신혼→만혼

30일 본지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서비스인 ‘빅카인즈’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이 제1차부터 제3차까지 진행되는 동안 정부 대책은 결혼을 중심으로 점차 주거, 일자리 등으로 옮겨겼다. 기본계획이 발표된 날짜부터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키워드로 넣어 1년간 보도된 기사들을 대상으로 분석했다.

우선 1차(2006년 6월) 계획의 뉴스 키워드를 분석해보니 ‘저출산’, ‘정부’, ‘사회’ 등의 기본적인 단어를 제외하면 ‘출산’, ‘보육’, ‘교육비’, ‘가구’ 등이 30위 안에 속했다. 

2차(2010년 9월) 계획에서는 30위권 밖에 있던 ‘여성’이 6위로 뛰어올랐다. 결혼은 ‘신혼’으로 구체화했고, ‘근로자’ 또한 상위권에서 언급됐다.

또 1차 계획에서는 ‘주택’이 63위였던 것이 전부였지만, 2차 계획에서는 정부의 주거대책이 대대적으로 마련되면서 ‘주택’과 관련한 키워드들이 급증했다. 주택을 비롯해 ‘전세자금’, ‘무주택’, ‘국민주택기금’, ‘전세자금’ 등이 대표적이다. ‘출산휴가’, ‘육아휴직’, ‘급여’, ‘서민’ 등 복지 및 소득에 대한 단어도 늘어났다.

2차 계획에서 주택이 많이 언급됐다면 3차 계획에서는 ‘일자리’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졌다. ‘일자리’ 자체는 10위 내에 진입하지는 못했지만 ‘고용’, ‘노동’, ‘직장’, ‘근로자’ 등의 순으로 기사에서 언급된 양이 많았다. 2차에서 신혼으로 구체화했던 결혼 이슈는 3차에서 ‘만혼’으로 옮겨갔다.

3차 계획에서 새롭게 등장한 단어로는 ‘행복’이 눈에 띄었고, ‘청년’ 키워드도 비교적 상위권에 자리했다. ‘주택’, ‘주거’, ‘임대주택’ 등 주거 관련 키워드와 일자리와 연계한 일·가정 양립과 관련 키워드들의 언급도 증가했다.

◆헬조선, 노예… 고통 호소하는 여론

그렇다면 정부의 대책과 관련 기사에 대한 국민 반응은 어떠했을까.

글로벌 정보 분석 기업 닐슨에 의뢰해 3차례 발표된 계획과 관련한 포털 기사에 달린 댓글을 분석한 결과 정부 대책에 주로 등장한 키워드들로 인해 ‘힘들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룬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을 위해 3차 계획안이 발표된 2015년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넉 달간 ‘제3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키워드로 10개 이상 댓글이 달린 포털의 기사를 선별해 총 3만2236개의 댓글을 살폈다.

집계 결과 ‘아이’, ‘낳다’, ‘결혼’이 1∼3위를 차지했고 다음으로 ‘돈’, ‘나라’, ‘일자리’ 등의 키워드가 10위 내에 포진했다. 10위권에는 ‘힘들다’, ‘비정규직’, 자녀가 아닌 ‘자식’, ‘노예’ 등이 언급됐고 20위권에서는 ‘세금’, ‘헬조선’, ‘집값’ 등이 등장했다.

이러한 키워드에 대해 긍정적으로 언급된 단어로는 1위부터 ‘(경제나 가계)살리다’, ‘해결하다’, ‘좋다’, ‘행복하다’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고, 다음으로 ‘안정되다(8위)’, ‘즐기다(12위)’, ‘개혁하다(14위)’, ‘보장하다(17위)’ 등이 있었다.

반면 부정적으로 언급된 단어로는 1위부터 ‘아니다’, ‘못하다’, ‘안 되다’, ‘싫다’, ‘망하다’ 등이 상위권에 자리했고, 이밖에 ‘무능하다(9위)’, ‘고통받다(12위)’, ‘쓸데없다(17위)’ 등이 뒤를 이었다.

결국 3차에 걸친 계획으로도 국민의 체감도는 나아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근본적인 불균형 개선하는 재구조화 필요

정부가 3차에 걸쳐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발표했지만 주된 내용은 1차적인 대응 위주였다. 출산이 감소해 인구가 줄면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노동력이 부족해져 결국 국가의 잠재성장률을 둔화시킨다는 부분에만 골몰한 탓이다.

1차 계획의 틀이었던 ‘출산과 양육에 유리한 환경 조성’은 2차에 그대로 이어졌고 일·가정 양립, 양육부담 경감 등에 대한 세부과제로는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기에 역부족이었다. 3차에서도 일자리·주거대책 강화와 맞춤형 돌봄 확대 등의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올해 출생아 수는 30만명선조차 위태로울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기존 대책에 한계를 느낀 정부는 3차 기본계획에 대한 재구조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저출산 미래비전(안) 전문가 포럼’에서는 과거 발표된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송다영 인천대 교수(사회복지학)는 “현 상황은 국가가 산업화, 경제성장과 함께 수반해야 할 보편적 사회복지체계를 제대로 구축하지 않음으로써 생겨난 사회적 불균형과 부정합으로 봐야 한다”며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을 시민으로서의 기본권을 확장하는 적극적, 미래지향적 방식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삼식 한양대 교수(고령사회연구원장)는 “2017년 1.05, 2018년 0.97 등 지나치게 낮은 수준의 합계출산율이 지속되는 데 반해 전반적인 논의 수준은 한가롭다는 생각이 든다”며 “과거의 잘못된 접근을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시적 접근이나 상호연계 등 새로운 접근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