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11-01 03:00:00
기사수정 2018-10-31 21:03:54
도심재생 성공 상징 수원 행궁동
지난달 5일 대만 가오슝(高雄)시 부비서장과 공무원 8명이 경기도 수원의 ‘행궁동’을 찾았다. 이들은 마을 커뮤니티센터와 옛 마을 모습을 사진 등으로 보관하고 있는 마을 박물관, 벽화거리, 공방 등을 둘러봤다. 이들의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시장을 비롯한 시 관계자들이 대거 다녀갔다. 또 국내에서는 인천 강화군과 충북 청주시 오창읍 등 올해 들어 모두 28개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기관 인사 1만여명이 오는 등 국내외 도시와 주민, 도시재생 관련 기관, 학생들의 방문이 잇따른다. 마을을 찾는 순수 관광객만 월평균 수천명에 이른다.
|
수원 행궁동 벽화거리에 그려진 벽화. 수원시 제공 |
◆도시재생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행궁동
행궁동은 수원 화성 일대의 장안·신풍·북수·남창·매향동 등 12개 법정동을 하나로 묶은 행정동 이름이다. 220여년 전 화성이 축성될 당시부터 불과 수십년 전까지 행궁동은 수원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었다. 1997년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엄격한 개발 규제로 시간이 멈추기 시작했다. 여기에 수원시 외곽에 잇따라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고 급기야 도심 공동화가 진행됐다. 이 때문에 1980년대까지 법정동마다 있던 동사무소가 모두 문을 닫고 1개 동으로 묶어 운영할 정도로 쇠락의 상징이 됐다.
이 마을이 국제적인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것은 낙후 마을 오명을 벗고 싶어 하는 주민들의 의지와 ‘친환경이 도시경쟁력’이라는 고집스러운 정책을 이어간 지자체장 덕분이다. 주민들은 스러져가는 담벼락에 벽화를 그려 넣으며 ‘음침한’ 마을의 변화를 유도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지낸 염태영 수원시장은 예스러움을 간직한 성곽과 행궁에 골목길 등 원도심 마을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한 이 마을을 ‘친환경 마을’로 바꾸면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
수원 행궁동 벽화거리에 그려진 벽화. 수원시 제공 |
친환경 정책이 빛을 본 건 2013년 9월 개최된 ‘생태교통수원 2013’ 축제다. 생태교통세계축제인 이 행사는 한 달 동안 마을에 화석연료로 동력을 얻는 이동수단 운행을 중단하고, 자전거와 같은 비동력 이동수단과 대중교통만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거대한 마을 단위 전체에 1개월간 차량 운행이 없어진 축제는 세계에서 이 행사가 유일하다. 외면받는 도심의 상징이었던 이 낙후 마을에 행사기간 관광객만 100만명이 넘게 운집하면서 국내외 이목이 쏠렸다.
대성공을 이룬 축제 개최는 어려움이 많았다. 생활불편을 이유로 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축제 개최까지 2년여 동안 주민들은 행궁동 공사 현장과 시청 앞에서 매일 “시장 물러가라”며 시위했다. 수원시는 1200명의 주민추진단과 240명의 서포터스를 조직했고, 매일 가가호호 방문해 설득했다. 시 고위직 간부가 마을에 임시 거처를 만들어 살면서 주민의 애로사항을 듣고 마을의 비전을 설명했다. 주민들은 시의 ‘진정성’을 받아들여 행사에 동참했고 역사적인 ‘생태교통수원 2013’이 열렸다.
마을은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채 도보나 무동력 이동수단 이용이 편리한 도로환경을 갖췄다. 전선 지중화와 간판 정비에 이어 골목벽화와 테마별 거리 조성 작업 등을 거치자 ‘낙후 마을’은 어느새 ‘예술 마을’로 변했다. 공방과 마을 커뮤니티센터, 마을박물관, 골목 전시실 등이 속속 자리를 잡았고 상가들도 연이어 입점하자 떠났던 마을 사람들과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재개발이 아닌 도시재생의 롤 모델이 탄생한 것이다. 시는 생태교통마을의 자리매김을 위해 지금도 월 1회, 또는 주민들이 원할 경우 수시로 차 없는 마을 운영을 하고 있다.
|
하늘에서 바라본 수원화성 안의 행궁동 일원. 수원시 제공 |
◆생태교통마을에서 특례시로 위상도 제고
아무도 가보지 못한 도심 속 생태교통마을로 국내외 벤차마킹의 대상이 된 수원시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 온 사업이 ‘특례시’다. 특례시는 인구 50만 이상의 시에 일반시와 달리 조직·재정·인사·도시계획 등 자치 행정과 재정 분야에서 폭넓은 재량권과 특례를 인정하는 도시를 말한다. 수원은 광역시인 울산보다 인구가 10만명이 많고 광주시보다는 20만명 적은 125만명의 매머드 도시지만 행정체계는 인구 50만 도시와 같아 행정·재정적으로 심각한 동맥경화 현상을 겪고 있다.
이에 수원시는 인구 100만명 이상인 고양·용인·창원시와 함께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특례시 지정 활동을 펼쳤다. 이들 4개시는 지난 8월8일에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도시 특례 실현을 위한 ‘상생협약’을 체결하고, ‘공동건의문’을 채택해 대통령과 국회의장, 국회 행안위원장, 자치분권위원장,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9월 12일에는 공동대응 기구인 ‘특례시 추진공동기획단’을 출범하고, 국회에 계류된 법안이 조속하게 상정될 수 있도록 여론 조성을 위해 학술대회와 정책간담회, 토론회 등을 지속해서 진행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지난 30일 경주에서 열린‘제6회 지방자치의 날’을 맞아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과 재정분권 추진방안이 발표됐다. 인구 100만명 이상의 기초자치단체에 ‘특례시’로 행정명칭을 부여하고 일정 사무권한을 위임하는 게 골자다. 이양되는 사무권한의 구체적 내용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행안부는 이들 4개 시가 요구해온 상당 부분의 권한 이양을 수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김영석 기자 loveko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