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우리생물] 은어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면 신혼여행을 떠날 채비에 분주한 은어가 생각난다. 미식가라면 머릿속에 떠오를 섬진강 은어구이나 은어회의 향긋한 수박향이 은은히 전해진다. ‘물고기는 비린내가 난다’는 선입견을 떨쳐버리는 데 은어면 충분하다.

 

바다빙어목 바다빙어과에 속하는 은어는 30㎝ 정도까지 자란다. 눈처럼 하얀 입, 황록색 광택을 띠는 날렵한 몸매, 노란 배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 등 참으로 귀하게 생겼다. 하천과 바다를 왕래하는 회유성 어류인 은어는 베트남 북부, 홍콩, 중국, 한국, 일본 홋카이도 등 북서태평양에만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를 포함해 남해안과 동해안의 물이 맑은 하천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그중 섬진강 은어가 유명하다.

 

은어는 이빨이 독특하다. 바다에서 살아가는 새끼 은어는 뾰족뾰족한 원뿔형 이빨(원추치)이 나 있지만, 이른 봄 하천으로 오르면서 원추치가 모두 빠지고 빗살 모양의 이빨(즐상치)이 새로 생긴다. 식성이 바닷속을 떠다니는 동물성 플랑크톤에서 바위에 붙어 있는 식물성 조류(특히 규조류·硅藻類)로 바뀌기 때문이다. 영양가 높은 규조류를 나눠 먹고 싶지 않은지 터 좋은 곳을 골라 세력권을 만든 은어는 다른 녀석이 접근하면 온몸을 던져 밀쳐낸다.

 

여름 내내 규조류를 쓸어 먹으며 통통하게 성장한 은어는 단풍이 물들면 알을 낳기 위해 하류로 내려가 무리를 이룬다. 수정된 은어 알은 보름 정도가 지나면 부화 준비를 모두 마치고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가 일제히 알을 깬다. 막 태어난 은어는 길이가 1㎝도 채 되지 않으며 물살을 타고 바다로 떠내려간다. 하천에 가까운 바닷가 모래 해수욕장은 새끼 은어가 겨울을 보내는 곳이다. 여름엔 더위를 피해 물놀이를 즐기던 아이들의 놀이터가 겨울엔 새끼 은어의 보금자리로 바뀌는 셈이다.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은어의 향긋함이 우리 강에 오래오래 머무르면 좋겠다.

 

김병직·국립생물자원관 유용자원활용과 환경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