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에게는 만질 수 있는 글자가 필요해요” 15개 대학 자판기에 붙은 ‘점자’

[스토리세계-11∙4 한글점자의날②] 점자확산 프로젝트 ‘훈맹정음’








서울여대 ‘훈맹정음팀’의 ‘손끝으로 읽는 자판기’ 프로젝트. 출처=훈맹정음 페이스북

각종 캔 음료수 위에는 점자가 새겨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려지만 막상 점자를 읽어보면 박혀있는 글자는 달랑 ‘음료’. 어딘가 부족하다. 음료를 담은 캔인지는 알 수 있지만 탄산음료인지 이온음료인지 음료의 종류까진 알 수 없다.



지난 1일 서울 노원구 서울여자대학교에서 만난 ‘훈맹정음’ 팀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지적했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자판기에 음료이름을 점자로 표시하고 초등학생을 위한 점자교육 자료를 만드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여대 ‘훈맹정음팀’의 ‘손끝으로 읽는 자판기’ 프로젝트. 출처=훈맹정음 페이스북

◆ 자판기에 붙은 점자…“시각장애인에게는 만질 수 있는 글자가 필요합니다”



‘훈맹정음’은 지난해 서울여대 인권수업인 ‘바롬’을 통해 탄생한 팀이다. 한글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점자 ‘훈맹정음’에서 이름을 따왔다. 수업 과제로 만난 팀은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시각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한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하고 있다.



이들이 지난해 한글점자의 날(11월 4일)부터 시작한 ‘손끝으로 읽는 자판기’ 프로젝트는 교내 자판기에 점자를 붙여 음료이름을 표시하는 활동이다. 시각장애인이 음료를 선택할 때 점자를 읽고 마음에 드는 음료를 고를 수 있도록 하는 취지다. 활동이 관심을 받자 팀은 다른 대학에 제안서를 보냈고 현재 이화여대, 연세대, 성균관대 등 15개 캠퍼스 자판기에 점자가 붙었다.



훈맹정음팀 이수현(22)씨는 “캔 음료 종류가 점자로 표시돼 있지 않다는 기사를 보고 팀 모두가 아이디어를 내 자판기 프로젝트가 탄생했다”며 “다른 대학에도 제안했더니 많은 대학에서 문제의식을 공감해줬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점자교육을 하고 있는 서울여대 훈맹정음팀. 출처=훈맹정음 페이스북

같은 달 훈맹정음팀은 두 번째 프로젝트인 ‘손끝으로 읽는 교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는 초등학생에게 점자를 알려주는 프로젝트로 어렸을 때부터 점자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추진했다. 교사 커뮤니티를 통해 점자교육 자료를 공유했고 적지 않은 교사들이 교육 자료를 요청했다. 일부 특수학교에는 직접 찾아가 점자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최근 훈맹정음팀은 시각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한 ‘손끝으로 읽는 세상’ 프로젝트에 나섰다. 6명의 시각장애인 이야기를 듣고 이를 영상과 책에 담아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리는 활동이다. 훈맹정음팀은 “내년 스토리펀딩을 통해 직접 만든 영상과 책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여대 훈맹정음팀. 왼쪽부터 황지수(24), 유경민(22), 이수현(22)씨.

◆ “시각장애인은 우리와 똑같다…단지 환경이 장애를 만들고 있는 것”



이들은 장애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장애인들과 직접 소통하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훈맹정음팀 황지수(24)씨는 “관심이 없으면 알지도 못하고 넘어갔을 부분이 많을 텐데 시각장애인과 소통하며 환경이 장애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눈 나쁜 사람도 안경에 도움을 받듯이 시각장애인도 환경만 제대로 마련돼 있으면 별무리 없이 우리와 똑같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훈맹정음팀 유경민(22)씨도 “수업으로 시작했지만 주변에 많은 관심을 받아 (활동을) 멈출 수가 없었다”며 “(점자 확산이) 관심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교육, 장애에 대한 인식개선 등으로 이어졌으면 한다"고 했다. 이어 "미디어에 나오는 장애인은 무언가를 못하거나 장애를 딛고 성공을 했다는 것밖에 없는데 그들도 우리와 똑같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영상=이우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