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11-04 21:00:24
기사수정 2018-11-04 21:00:23
1605년 11월5일 영국에서 발생한 가이 포크스의 화약음모사건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가이 포크스 가면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사건이었다.
오늘날 가이 포크스 가면은 부도덕한 국가적 권력에 눈을 부릅뜨고 항거하기보다 아예 이를 비웃음으로써 한결 더 통렬한 타격을 가하기 위해 쓰인다. 정치적 권력만이 아니라 큰 기업에서 독재자보다 무섭게 군림하는 오너 일가의 횡포에 대항하는 데도 쓰인다.
부도덕한 국가권력이건 재벌이건 치부가 드러나면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그리고 믿지 않아도 두려울 것 없다는 식으로 마구 이상한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 상례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변명에 일일이 대꾸하다 보면 스스로가 서글퍼질 때 그 가면은 아주 좋은 도구다. 하지만 그 가면의 기원이 되는 가이 포크스 화약음모사건은 오늘날의 가면 활용과는 거리가 멀다.
열렬한 가톨릭 신자인 가이 포크스와 그의 동지들이 가톨릭을 탄압하는 제임스 1세를 살해하기 위해 의회를 폭파하려 했던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끔찍한 계획은 거의 성공할 뻔했으나 마지막 순간 하찮은 실수로 들통 나 관련자들이 처형을 받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왕실은 그 뒤 왕의 무사를 기념하기 위해 11월5일을 감사절로 정했으며 영국 국민은 ‘가이 포크스 데이’로 부르며 경축했다. 영국 국민이 가이 포크스 인형을 들고 축제를 벌이다 불에 태웠을 텐데 그것이 변형돼 가면이 됐다.
그러나 여러 종교가 난립한 영국에서 모두가 왕의 무사를 축하할 리는 없어 다른 많은 국민은 그 거사의 실패를 아쉬워하며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거사의 실패를 아쉬워하는 행사가 회를 거듭할수록 가이 포크스를 찬양하는 축제가 되면서 가이 포크스 가면은 폭정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막상 가이 포크스 사건의 대상인 제임스 1세는 성군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폭군이라고도 할 수 없는 국왕이었는데….
양평(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