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11-05 14:00:00
기사수정 2018-11-04 19:27:22
‘상호보증’ 따라 상대국 판결 인정도 / 법조계 “미국 법원에 판결 집행 신청 방법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 판결을 놓고 일본 정부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우리 법원의 판결이 국외에서 갖는 법적 효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내 법원 판결은 어떻게 나라밖에서 효력을 가질 수 있을까.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민사소송법에 따라 외국 법원 판결은 일정 요건을 갖춰야 국내에도 효력이 미친다. 이를 ‘외국 법원 판결의 승인 제도’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않아야 하는 게 대표적이다. 지난달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고 여운택씨와 고 신천수씨에게 패소를 확정한 일본 법원 판결이 “우리나라의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반한다”면서 그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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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씨가 지난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 판결에 참석, 선고를 마친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이른바 ‘상호보증’도 외국 법원 판결의 승인 요건 중 하나다. 상호보증이란 외국이 조약이나 국내법에 의해 한국 판결의 당부를 조사하지 않고 민사소송법상 외국 법원 판결의 승인 요건과 같든가 이보다 관대한 조건 아래에서 한국 판결의 효력을 인정하는 경우를 뜻한다. 상대국이 우리 판결을 인정하면 우리도 해당 국가 판결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에 승소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미국 법원의 승인을 받아 1인당 1억원이란 손해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캘리포니아주 등 미국의 대부분 주는 한국과 상호보증에 따라 국내법상 우리 법원 판결의 집행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고 한다. 대법원은 지난해 한 외국 판결의 승인 및 집행 판결을 내리면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외국 판결 승인 요건은 우리나라 민사소송법이 정한 것보다 과중하지 않고 실질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는 정도”라고 판시한 바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일본 법원이 우리 법원 판결의 집행을 해줄 리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면서 “(피고인) 신일철주금의 미국 내 자산이 많을텐데, 원고들이 상호보증에 따라 미국 법원에 우리 법원 판결을 집행해 달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미국 입장에서는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을 고려할 수밖에 없어 상당히 복잡한 국제문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우리 대법원 판결에 대해 연일 강경한 입장을 쏟아내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즉각 “국제법에 비춰 볼 때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고 밝힌 데 이어, 고노 다로 외무상은 “일본은 이번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고 한국 정부가 책임지고 (피해자들에게) 보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지난달 31일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강제동원조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 의원은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들은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1945∼2000년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약 9만3000배인 점에 비춰 볼 때 미수금 보상 기준을 당시 일본국 통화 1엔당 2000원에서 9만3000원으로 개정해 국가가 피해자들의 고통을 치유하고자 노력하려 한다”고 개정안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현행법은 1938년 4월1일부터 1945년 8월15일까지 일제에 강제 동원돼 노무제공 대가 등을 받지 못한 피해자에게 미수금을 당시 1엔당 2000원으로 환산해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권순일 대법관과 조재연 대법관도 신일철주금의 배상 책임을 명기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 당시 “국가는 피해 국민의 소송 제기 여부와 관계없이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게 할 책무가 있다”는 반대 의견을 낸 바 있다.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취지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