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11-05 15:19:50
기사수정 2018-11-14 10:44:58
힘든 업무에 비해 보상 미흡한데… 손 놓은 당국
경기 용인시의 한 고등학교에 근무 중인 A(36) 교사는 얼마 전 동료 교사들과 작은 실랑이가 벌어진 이후 아직까지 서먹하게 지내고 있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감독관 지원을 놓고 일종의 ‘눈치게임’이 벌어진 것. A 교사는 “허리가 조금 아파서 진단서를 내고 빠질까 했지만 이미 상당수 교사가 못 하겠다며 버티고 있었고, 미혼이라는 이유만으로 3년째 감독관을 맡는다”고 털어놨다.
이달 15일 치러지는 2019학년도 수능을 앞두고 교단에서는 올해도 감독관 지원 문제로 크고 작은 갈등이 빚어졌다. 일반적으로 교사들은 수능 감독관을 맡길 꺼려한다.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시험인만큼 하루 종일 긴장한 채 서 있어야 하는데다, 자칫 문제라도 생기면 큰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정부가 나서서 매년 되풀이되는 수능 감독관 기피 현상을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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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지진 여파로 연기된 2018 대학수학능력시험 고사장 시험감독실에 수능 시험 물품들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
5일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올해 수능 감독관은 총 7만5600여명이 투입된다. 전체 중·고교 교원이 약 14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절반 이상이 수능 감독관으로 차출되는 셈이다. 한 시험실에는 감독관이 2명(4교시 탐구영역은 3명)씩 배치된다. 수능 시행 업무를 맡고 있는 전국 시도교육청은 지난달 초쯤 관내 중·고교들에 감독관 지원 관련 공문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공문을 받은 교장·교감 등 학교 관리자들은 할당된 인원을 채우기 위해 교사들과 한바탕 씨름을 해야 했다고 한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고교 교감은 “(교사들이) 대놓고 안 하겠다고는 못 하지만 꺼려하는 기색이 많다”며 “아예 진단서를 떼 와서 감독관 못 하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지역별 차이도 크다. 수험생이 많은 지역의 경우 교사 대부분이 예외 없이 차출되는 일도 있다.
교사들은 수능 감독관의 신체적·정신적 노고가 만만치 않은 데 비해 보수가 형편 없다고 입을 모은다. 감독관들은 수능 당일 오전 7시30분까지 출근해 10시간 넘게 서 있어야 한다. 수험생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옷차림 등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써야 하고, 혹여 문제라도 생기면 징계나 금전적 손해배상 등을 감수해야 한다. 예비소집일을 포함한 이틀치 감독관 수당은 12만∼13만원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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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학생들이 수능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뉴시스 |
최근 실천교육교사모임이 공개한 전국 중·고교 교사 5000여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10명 중 7명은 수능 감독이 심리적(71.8%)·체력적(71.5%)으로 부담스럽다고 했다. 수능 감독 시 힘든 점으로 ‘낮은 수당’을 선택한 응답자는 28.2%, ‘불합리한 차출과 배치’는 17.2%, ‘이른 시작’은 14.4%였다. 감독관 차출·배정이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지느냐는 질문에는 49.6%가 부정적으로 답했다.
해당 설문 응답자들은 가장 개선이 시급한 부분으로 ‘감독관 의자 배치’(67.3%)를 꼽았다. ‘대학의 적극적 참여’(53.1%), ‘감독관 수당 인상’(44.4%), ‘감독관 차출방식 개선’(17.4%) 등이 뒤를 이었다. 실천교육교사모임은 “수능 감독관 기피 풍조는 교사 개개인의 무책임한 심리에서 비롯된다기보다는 부담의 과도함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반면 교육당국은 이 문제와 관련해 별다른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감독관 수나 수당을 교육청이 임의로 늘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재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교사들은 ‘잘해야 본전이고, 조금만 실수해도 대참사’란 인식 때문에 수능 감독관을 기피하는 것”이라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당국이 교사들을 제대로 보호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