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폭탄 발언… ‘고노 담화’ 아버지와 다른 길 걷는 日 고노 외무상

“패소를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10월29일)

“극히 유감이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10월30일. 한국 대법원 강제징용 관련 판결 직후)

“한·일 간 법적 기본이 근본부터 손상됐다.”(10월31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전화통화)

“100% 한국이 책임을 져야 한다.”(11월1일. 자민당 의원과의 면담)

“한·일 관계의 법적 기반이 무너지면 미래지향도 없다.”(2일. 기자회견)

“(한·일 청구권 협정은) 한국 정부가 한국 국민에게 보상과 배상을 하겠다는 약속이다.”(3일. 가나가와현 거리 연설)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이다.”(4일. 군마현 강연)

“국제법에 기초해 한국 정부와 맺은 협정을 한국 대법원이 원하는 아무 때나 뒤집을 수 있다면 어떤 나라도 한국 정부와 일하는 게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그들(한국)은 알아야 한다.”(5일. 미국 블룸버그통신 인터뷰)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
지난달 30일 우리나라 대법원이 일본 기업 ‘신일철주금’(구 신일본제철)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것과 관련해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이 연일 쏟아내고 있는 강경 발언이다. 그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개인의 청구권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소멸되지 않았다는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설명하지 않은 채 한국이 협정을 깼다고만 주장하며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뢰도를 깎아내리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다.

일본 정부는 ‘한·일 간 청구권 문제가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해결된 만큼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국제법상 부당하다’는 자국 주장을 영문 문서로 만들어 해외 주재 공관을 통해 각국 정부와 언론에 알리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 극우성향 산케이신문은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판결을 오히려 한국이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계속해서 불성실한 대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강조할 구실로 보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고노 외무상이 이처럼 과거사 문제에 대해 연일 과격 발언을 늘어놓는 것은 집권여당인 자민당 내에서 입지를 강화하려는 목적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차기 총리를 꿈꾸는 그에게는 우익 세력의 지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2017년 8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개각을 단행하면서 외무상으로 기용됐다. 당시 아베 총리는 ‘사학스캔들’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분위기 반전이 필요했다. 고노는 아베 총리의 원전 재가동 정책에 반대하는 ‘탈원전파’였다. 자민당 내 여러 세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며 아베 총리가 살짝 머리를 숙인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게다가 그는 1993년 일본 정부의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를 발표한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 의장(발표 당시 관방장관)의 아들이기도 했다.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은 고노 외무상의 등장으로 ‘역사 수정주의’ 의심을 받는 아베정권의 행보가 바뀔 수 있다는 기대를 품기도 했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의 아버지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 의장.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부전자전’이 아니었다. 고노 외무상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2015년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고 아베정권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며칠 뒤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2017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만나 “문재인정권은 박근혜정권 때 일본 정부와 맺은 위안부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역사적 유산’은 안중에도 없었고, 오히려 고노 담화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싶어하는 아베정권과 찰떡같은 궁합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이는 정계 은퇴 이후에도 일본 정부의 반성을 촉구하는 그의 아버지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 의장과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고노 요헤이는 지난달 후쿠오카시에서 열린 강연에서 남북한의 종전선언이 시기상조라고 한 아들의 전날 발언에 대해 “진짜 시기상조인가”라고 되물으며, 남북한이 하나가 되려는 노력을 일본이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우상규 기자 skw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