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례에서 A씨는 B씨에게 공인인증서를 맡김으로써 B씨에게 ‘대리권’을 부여했다는 오해를 일으킨 게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대리권이란 대리인이 본인을 대신해 경제적 업무 등을 수행할 수 있는 권리를 가리키는데요. 위에서도 상대방에게 대리권을 부여해 대리인으로 인정했다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대리권이 없는 ‘무권대리인’임에도 3자의 입장에서 대리인에게 대리권이 있다고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이는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대리인이 공인인증서 명의자와 가족관계라면, 3자는 대리인에게 대리권이 있다고 오해할 가능성이 더 큽니다.
우리 민법에서는 이 같은 사안에 대해 ‘표현대리’(表見代理) 제도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표현대리란 본인의 대리권을 무권대리인에게 부여한 것처럼 오해할 만한 사정이 생긴 만큼 본인에게도 일부 책임을 지우는 것을 이릅니다. 표현대리의 성립요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리인에게 기본 대리권이 있을 것 ▲대리인이 기본 대리권의 범위를 넘는 대리행위를 할 것 ▲상대방이 대리인에게 대리권이 있다고 믿고 또한 그렇게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민법 126조).
위 사례에서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A씨와 B씨를 상대로 금융기관에 공동으로 6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본인을 모용(이름 등을 사칭하는 것)한 사람에게 본인을 대리할 수 있는 ‘기본 대리권’이 있고, 그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믿을만한 사유가 있었다면 본인에게 민법상 표현대리 책임이 성립한다. A씨가 연말정산 업무를 처리해달라며 공인인증서와 각종 서류를 맡겼다면 A씨의 언니에게 기본 대리권을 준 것으로 봐야 한다." (대구지방법원 2017. 8. 30. 선고 2017나1439 판결)
재판부는 A씨가 B씨에게 공인인증서를 맡긴 행위 자체를 ‘기본 대리권의 수여’라 보고, A씨의 표현대리 책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또한 금융기관이 전자서명법에 의해 발급된 공인인증서로 A씨의 신분을 확인했기 때문에 그 외 전화나 면담을 통해 다시 본인 여부를 확인할 의무가 없다고도 판결했습니다.
지금의 공인인증서는 과거의 인감도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인인증서만 있으면 은행 거래부터 부동산 처분까지 대부분의 경제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공인인증서는 인감도장과는 다르게 실체가 있지 않고, 쉽게 복제할 수 있다는 점 등 때문 그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공인인증서를 타인에게 함부로 맡기면 경제적 손실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게 될 수 있어 유의해야 합니다. 만약 본인의 권리를 타인이 대신 행사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관련 법률을 미리 숙지해서 표현대리 책임을 지지 않도록 대비하기 바랍니다.
최진숙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jinsook.choi@barunla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