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11-16 21:01:57
기사수정 2018-11-16 21:40:50
‘게놈코리아 울산프로젝트’ 박종화 유니스트 교수
한국의 ‘게놈(genome·유전체)’ 연구 기술은 세계 정상급이다. 2016년 11월 유니스트(UNIST)서 한국인 표준 게놈 지도 ‘코레프(KOREF)’를 완성했다. 한국인이라는 생물종의 대표 유전체지도를 만든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인구집단을 대표하는 게놈지도를 만든 것은 처음이었다. 유니스트는 ‘게놈코리아 울산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한국인 1만명의 게놈을 분석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게놈을 해독해 유전적 다양성을 정밀히 측정해 표준화하고, 이를 활용한 게놈 기반 바이오 의료산업 빅데이터를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희귀질환과 암의 유전적 다양성을 비교할 수 있어 ‘한국인 맞춤형’ 약과 의료기술 개발이 가능해진다. 그 중심에 있는 박종화(51) 생명과학부 교수(게놈산업기술센터장)를 16일 게놈산업기술센터에서 만났다.
박 교수에게 게놈을 연구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박 교수는 “노화를 정복하고 싶어서요”라고 답했다. 다시 “노화를 정복하고 싶은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제가 좋아하는 걸 오래하고 싶어서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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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화 유니스트 생명과학부 교수가 16일 유전체 정보를 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해독기술의 국산화와 생명윤리법 등 규제완화, 국가적인 연구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유니스트 제공 |
그는 “생명이라는 우주와 프로그래밍된 생명현상을 모두 이해하고 시뮬레이션하고 싶다”며 “그런데 80년이라는 수명 안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노화를 정복해 수명을 5000년 정도로 늘리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어릴 때부터 동물과 생명현상에 관심이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게놈을 연구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고등학생 때였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생 때 미국과 영국에서 인간 게놈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뉴스를 봤다. 인간이 가진 모든 유전정보가 다 입수된다는 것이었다. 서울대에 입학해 도서관에서 노화와 관련된 책은 모두 섭렵했다. 그러나 한글로 된 노화 관련 책은 단 한 권이었다. 내용도 단순한 리뷰 같은 것이었다. 반면 영어로 된 노화 관련 책은 몇십배나 됐다. “과학을 한다는 것은 영어를 하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순간”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유학을 준비했다. 영국 애버딘대학에서 생화학을 공부했다. DNA 구조 연구를 하고 싶어서였다. 한국인 게놈을 분석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1995년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박테리아 게놈이 완전 해독돼 인간 게놈 해독이 더 빨리 분석될 것으로 확신했다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그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게놈코리아 울산프로젝트’는 궁극적으로 한국인에 최적화된 질병 예측과 맞춤 치료를 가능케 하자는 즉, ‘정밀의학’이다.
기술발달로 게놈 해독 비용이 100만원대로 떨어졌지만, 박 교수는 일반인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10만원대로 더 떨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선 해독기술의 국산화와 생명윤리법 등 규제완화, 국가적인 연구지원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영국과 일본 등은 규제가 거의 없어 게놈을 연구단계에서 뛰어넘어 출산유전자검사, 암진단 등에 활용하고 있다. 한국은 인간배아 유전체 교정 연구를 할 경우 현행 생명윤리법에 따라 형사처벌된다. 세계가 게놈 연구를 통해 정밀의학을 신산업으로 이끌어가고 있는데, 한국만 관련 연구자들의 손발을 묶어놓고 있는 셈이다. 박 교수는 “법의 모호함과 엄격한 제한 조건으로 연구현장에서는 어떤 연구가 합법적인 연구인지 판단이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게놈연구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게놈 분석과 데이터센터다. 데이터를 모아 규모가 커져야 더 중요한 질문을 해결할 수 있어서다. 이를 위해선 고성능 컴퓨터를 가동할 수 있는 전기가 중요하다. 울산은 원자력발전소가 모여 있어 안정적인 전기공급을 통해 세계 최대 ‘정보처리화기지화’가 가능한 곳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박 교수는 “세계인의 게놈을 모두 해독하는 ‘70억 게놈프로젝트’도 장기적으로 추진 중이다. 결국 모든 인간의 게놈을 다 해독하고 분석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20년 안에 인간 게놈 해독이 완성되고, 2042년에는 인류가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해독할 것”이라고 말하는 박 교수의 눈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울산=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