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좀 한다는 대학생들도 혀 내두른 '불수능'

"문제풀이 기계돼야 잘 풀 듯" …만점자도 대폭 줄 것 “문제와 지문을 일부러 꼬아서 끼워 맞추는 느낌이 들었다. 대학에서 충분히 (국어를) 공부했음에도 (수능 국어영역)점수가 떨어지는 것을 보면 수험생들이 ‘문제풀이 연습’만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6일 서울 강남구 진선여자고등학교에서 열린 `이투스 2019년 수능 가채점 분석 설명회`를 찾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강사의 대입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지난 15일 치러진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1교시를 악몽으로 만든 국어영역을 풀어 본 대학생 오동운(24)씨의 말이다. 국어교육 전공자임에도 이번 수능 국어영역 풀이에 엄청 애를 먹었는데 수험생들은 오죽했겠냐는 것이다. 오씨와 함께 17일 교육 관련 단체인 ‘프로젝트 위기’가 서울 송파중학교에서 연 ‘수능 풀어보기’ 행사에 참여한 대학생들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참가 대학생 대부분 ‘상위권 대학’을 포함해 서울지역 대학에 다녔고 평균학점 3.57점으로 진학 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실제 시험장과 유사하게 꾸며진 교실에서 올해 수능 국어·수학·영어영역을 나눠 풀었다. 국어영역을 푼 5명의 평균점수는 67점(원점수 기준)으로, 입시업체들이 내놓은 예상 등급 커트라인의 4등급에 해당했다. 수학 ‘가’형을 푼 1명의 점수는 40점, ‘나’형을 푼 2명의 평균점수는 67.5점이었다. 각각 6등급과 4등급을 받을 점수다. 영어영역 응시생 4명의 평균점수는 73.25점으로 3등급이었다. 교육학 전공자인 배수연(23)씨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했다고 해서 수능을 제대로 풀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외국대학에 다니는 김문섭(23)씨는 “영어영역을 풀어보니 영어 실력과 관계없이 짧은 시간에 (지문과 문제를) 얼마나 빨리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는지가 관건인 시험 같았다”고 각각 지적했다. 
18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청운관에서 대입 수험생들이 2019학년도 수시모집 논술고사를 치르고 있다. 연합뉴스

수능 출제기관이 매번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했으면 어려움 없이 풀 수 있는 문제”, “대학에서의 학업에 필요한 능력을 확인하는 문제를 냈다”라는 식으로 하는 얘기가 많은 수험생에게 공허하게 들리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수능 창시자로 불리는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도 과거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현행 수능은 대학에 진학할 학생들에게 필요한 언어·수리능력 등을 평가한다는 취지에서 벗어나 국어·수학시험을 잘 보는 학생들을 가려 성적대로 줄 세우는 시험”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응시생 중 가장 최근에 수능을 봤다는 이승현(20)씨가 수학영역을 풀어본 뒤 “몇몇 개념을 까먹었다”며 “대학에서 배우지도 않고 단 몇 달 (공부를) 쉬었다고 잊히는 것을 3년간 공부했다니 허망하다”고 한 것도 박 명예교수의 진단에 힘을 실어준다.

한편 가채점 결과로 본 올해 수능만점자는 전체 응시생 52만7505명(3교시 영어영역 기준) 중 4명 정도로 추정됐다. 18일 입시업계에 따르면 올해 수능 만점자는 전국에서 4명이며 모두 자연계열 학생으로 알려졌다. 재학생 1명, 졸업생 3명이라고 한다. 졸업생의 만점 여부는 주로 입시학원을 통해 신속하게 알려지는 데 비해 재학생 만점 사실은 학교나 교육청을 통해 상대적으로 늦게 알려지는 만큼 만점자가 4명에서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공식적으로 전 영역 만점자를 발표하지 않고 성적통지일에 영역별 표준점수 최고점자 수만 발표한다. 지난해에는 채점결과 브리핑에 나선 성기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전 영역 만점자(영어·한국사 1등급 기준)가 재학생 7명, 졸업생 7명, 검정고시생 1명으로 총 15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올해는 국어영역이 특히 어려웠다는 평가가 나와 만점자 수 자체가 지난해보다 대폭 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수능 문제와 정답에 대한 수험생의 이의신청은 이날 오전 11시 기준 600건에 육박했다. 영역별로는 사회탐구가 340여건으로 가장 많고, 수학 영역이 80여건, 국어영역이 80여건 접수됐다. 교육과정평가원은 19일 오후 6시까지 홈페이지에서 이의신청을 받아 심사한 뒤 26일 정답을 확정해 발표한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