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적폐’ 내몰린 디젤, 완전 퇴출이냐 명예회복이냐 / 무너진 친환경 신화… 내리막 길 걷는 ‘디젤차’의 운명
참 기구한 삶입니다. 오랜 무명 시절을 지나 ‘그’는 마침내 스타가 됐습니다. 인기는 영원할 것 같았죠. 하지만 2015년 스캔들이 터지며 그간 쌓아올린 이미지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세상은 ‘그’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무대에서 내려오라고 합니다. 그는 바로 ‘디젤’입니다.
2015년 미국에서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실이 드러난 뒤 불안 불안한 길을 걷던 디젤이 ‘운명의 날’을 맞았습니다. 정부가 얼마 전 ‘클린 디젤’ 정책을 공식 폐기하겠다고 발표했죠. 디젤의 고향인 유럽마저 시점까지 못박아 “경유차를 포함한 내연기관차를 퇴출하겠다”고 합니다.
디젤의 시대는 정말 끝난 걸까요? 디젤 업계는 전설의 야구선수 요기 베라처럼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라고 외칩니다. 디젤의 미래는 어떨지 다음 일대기를 보면서 한번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동차업계 변방을 떠돌다
프랑스 태생 독일인 엔지니어 루돌프 디젤은 1892년 자동차 효율을 끌어올릴 엔진을 구상해 특허를 따냅니다. 이 엔진은 루돌프 아내의 제안에 따라 ‘디젤’이란 이름을 얻게 되죠. 하지만 갓 태어난 디젤 엔진은 첫걸음도 떼기 전에 아버지를 잃습니다.
1913년 영국해협을 건너는 증기선에 몸을 실은 루돌프가 돌연 사라진 것입니다. 많은 이들은 그가 자살했다고 하지만 정확한 사인은 아무도 모릅니다.
디젤의 잠재력을 눈여겨 본 자동차업계는 기술 개발을 이어가 마침내 1936년과 이듬해 벤츠와 푸조가 잇따라 디젤 승용차를 내놓습니다.
승용차 시장에 데뷔는 했지만 빛을 보기까지는 수십년이 더 걸립니다. 그 사이 디젤은 변방에서 주로 힘쓰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트럭, 버스, 특수차 등에서 말이죠.
디젤이 왜 힘이 좋냐고요? 연료에서 힘을 얻는 방식이 휘발유차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엔진은 피스톤이 쭉 밀고 들어와 연소실 압력을 높였다가 연료가 타면서 피스톤을 밖으로 밀어내며 바퀴를 굴립니다. 주사기 앞쪽 구멍을 막고 피스톤을 눌렀다가 손을 떼면 피스톤이 튀어나가는 현상을 떠올리면 좋겠네요.
휘발유는 불꽃을 만들어 줘야 타고, 이상 폭발을 일으키지 않으려면 피스톤으로 ‘정도껏’ 압축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경유는 불꽃 없이 압력만 높아도 탈 수 있기 때문에 휘발유보다 두 배 더 압축시킬 수 있습니다. 다시 주사기에 비유하자면, 경유는 피스톤을 주사기 안까지 꾹 밀어넣고 더 큰 힘을 낼 수 있는 겁니다.
그러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고, 디젤은 높은 연료 효율을 얻은 대가로 대기오염물질을 내놓습니다.
국립환경과학원이 2016년 소나타로 실험해 보니 디젤차는 휘발유차보다 질소산화물은 10.7배(실외 도로 기준), 탄화수소는 1.7배 많았습니다. ‘매연’이라고 부르는 입자상물질(PM)도 휘발유는 없는 반면 디젤은 1㎞당 0.0013g에 달했죠.
이렇게 힘은 좋지만, 더럽다는 문제 때문에 디젤에겐 주연을 맡을 기회가 좀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클린 디젤’로 맞은 전성기
그러나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디젤 오염물질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이 속속 등장합니다. 또 디젤유의 황 성분을 확 낮춘 초저유황(ULSD)을 쓸 수 있게 되면서 승용차로 영역을 넓히기 시작합니다.
사회 분위기도 한몫 합니다. 교토의정서 채택(1999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이 당면과제가 되면서 유럽은 본격적으로 ‘디젤 스타 만들기’에 나섭니다. 디젤은 같은 거리를 갈 때 연료를 덜 쓴다(고연비)는 이점 때문에 이산화탄소나 일산화탄소 배출량이 휘발유보다 10∼20% 적거든요.
유럽 정부는 수십억 유로를 들여 ‘미운 오리 새끼’ 디젤을 백조로 변신시킵니다. 1994년 23.1%였던 유럽 내 신규등록 디젤차 비율은 2000년대 후반 50%를 넘어섭니다.
‘녹색성장’을 표방한 이명박정부도 디젤을 ‘캐스팅’해 클린 디젤 스타로 육성합니다. 유로5 이상 차량은 환경개선 부담금을 면제해 주고 수도권 공용주차료, 고속도로 통행료, 혼잡통행료를 깎아줍니다.
오염물질을 줄이려면 여러 장치를 추가해야 했기 때문에 디젤차 가격은 휘발유차보다 비쌌지만, 경유값이 저렴했던 덕분에 몇 년 타면 차값을 상쇄하고도 이득이었습니다. 국내 디젤차 비율은 아직도 40%를 웃돕니다.
하지만 이런 디젤 띄우기가 세계적 현상이었던 건 아닙니다. 일본은 폭스바겐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3년이나 최근이나 디젤 승용차 비율이 1.3∼1.7%에 불과합니다. 미국은 예나 지금이나 휘발유차가 압도적이고요.
정용일 자동차환경네트워크 대표는 “일본은 자국 회사의 하이브리드 기술이 독보적인 만큼 경쟁 차량인 디젤을 키울 이유가 없었고, 미국은 디젤과 휘발유차의 배출 기준이 똑같아 디젤이 진입하기 어려웠던 데다 일본 하이브리드차와 경쟁하느라 디젤 시장이 커지지 못했다”고 설명합니다. 즉, 우리나라의 클린 디젤 정책은 세계적 흐름이었다기보다는 유럽의 정책에 우리가 편승한 측면이 큽니다.
◆‘클린 디젤 종식’ 선언했지만
디젤 전성시대는 2015년 미국에서 터진 스캔들로 저물기 시작합니다. 역시나 큰 약점이었던 배출가스에 발목이 잡혔습니다. 환경기준을 맞추기 위해 실내 테스트 때에만 저감장치가 정상 작동하게 한 것이죠.
박준홍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 연구관은 “오염 저감장치 중에 연료를 분사해 가동하는 게 있어 연비가 떨어질 수 있고, 장치 수도 많다 보니 제작 원가가 100만∼300만원, 대형차는 1000만∼2000만원까지도 올라간다”고 말합니다.
내연기관차에서 나오는 오염물질(탄화수소, 일산화질소, 질소산화물, 입자상물질)을 제거하는데 휘발유차는 삼원촉매 하나만 있으면 되지만 디젤차는 산화촉매, 배출가스재순환장치(EGR), 희박질소촉매장치(LNT), 선택적환원촉매장치(SCR), 매연저감장치(DPF)가 모두 필요합니다. 또 운전자들이 요소수(질소산화물 배출을 줄여주는 촉매제) 주입 등 제때 관리를 해줘야 하고요. ‘싸고 연비 좋은 클린 디젤’을 만들려던 욕심은 결국 각종 비리를 낳습니다.
마침내 지난 8일 정부는 ‘클린 디젤 정책을 공식 폐기한다’고 밝혔죠. 앞으로 디젤차는 저공해차로 인증받지 못하고, 기존 인증받은 차량은 더 이상 주차료·혼잡통행료 감면 혜택을 못 받습니다. 공공기관은 2030년까지 디젤차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했고요. 그럼 디젤은 정말 사양길에 접어든 것일까요.
무명 시절 디젤은 변방에서 힘쓰는 일을 도맡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승용차보다 대형 디젤차가 내뿜는 미세먼지가 수십배 더 많습니다. 디젤차 퇴출로 공기를 맑게 하려면 대형차를 대체할 수단이 있어야 하는데, 정부의 엄청난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천연가스 버스 도입 과정을 봐도 알 수 있죠.
아마 1990년대까지 서울 도심에서 시커먼 매연을 뿜는 버스를 자주 보셨을 겁니다. 디젤버스입니다. 당시 미세먼지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검은 매연은 보기에도 위협적이었죠. 정부는 1990년대 후반부터 보조금을 줘가며 천연가스(CNG)버스 보급을 강력히 추진합니다. 그런데도 대도시에 CNG 버스가 자리 잡는 데 20년 가까이 걸렸습니다.
온실가스 규제도 관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제작사들은 2020년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 97g/㎞을 맞춰야 합니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가 2020년 판매하는 자동차는 평균적으로 1㎞를 달릴 때 이산화탄소를 97g 이내로 배출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연비가 16.2㎞/ℓ인 그랜저 하이브리드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정확히 97g/㎞입니다. 그러니까 2년 안에 제작사들은 신차의 배출량을 하이브리드급으로 올려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굉장히 어려운 과제죠. 이를 못 지키면 초과한 g당 5만원씩 초과 차량 대수만큼 곱해 과징금을 내야 합니다.
차를 유럽에 수출하려면 2021년 95g/㎞으로 보다 높은 기준을 만족해야 합니다. 제작사 입장에서 연비 좋은 디젤과 완전히 절연하기 힘든 이유입니다.
이런 와중에 독일 자동차부품 대기업 로버트 보쉬는 실도로주행에서도 질소산화물 배출을 80% 이상 낮춘 디젤 엔진을 개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정용일 대표는 “독일 제작사들은 꾸준히 재기를 준비하고 있다”며 “수소 충전소나 전기차 주행거리 같은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디젤과 하이브리드가 경쟁을 벌일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전문가들은 클린 디젤 폐기가 비내연기관 확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가 확실한 전략을 짜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송상석 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은 “이명박정부는 녹색성장을 외치면서도 운행제한제도(LEZ) 도입이나 대형 디젤차 매연 문제는 소홀히 했다”며 “클린 디젤 폐기정책이 단지 구호가 아니라 엔진 교체, 연료 전환 등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호시탐탐 명예회복을 노리는 디젤차와 자동차 시장의 주연을 꿈꾸며 무럭무럭 성장 중인 수소차와 전기차. 어느 쪽으로 방향지시등을 켜야 할까요?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