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제는 전쟁의 원인… 그만두어야 한다”

日 ‘전후 민주주의’ 대표 지식인 / 말년엔 평화헌법 수호운동 헌신 / 가토 슈이치 비평글 한 곳에 모아 / 프라하의 봄 논한 ‘언어와 탱크’ /‘천황제를 논하다’ 등 27편 담아
가토 슈이치 지음/서은혜 옮김/돌베개/2만2000원
언어와 탱크를 응시하며/가토 슈이치 지음/서은혜 옮김/돌베개/2만2000원


일본 진보 그룹의 대표적인 지식인이며 문장가인 가토 슈이치(加藤周一·1919∼2008)의 비평을 모은 책이다.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담은 헌법 9조를 지키는 ‘9조 모임’을 이끌며 발표한 ‘다시 9조’까지 등 모두 27편의 평론을 담았다.

일본에 ‘전후 민주주의’라 부르는 한 시대가 있었다. 1945년에서 1960년대 무렵이었다. 침략전쟁과 패망을 곱씹으며 평화 수호를 기치로 내걸었던 일단의 지식인들이 이끌었다. 이들 중 하나가 가토 슈이치다. 지식인이라 나섰던 대다수가 기시 노부스케 등 우익정권에 편승해 돌아섰지만, 가토는 흔들림 없이 조직을 이끌어 나갔다. 현재 ‘일본을 되찾자’며 2012년 출범한 2차 아베 신조 내각의 ‘전체주의화’는 계속 되고 있다. 아베는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헌법 9조 무효화의 개헌을 약속하고 있다. 내년 4월 아키히토 왕의 퇴위로 헤이세이가 끝나고 새로운 왕을 맞는다. 이대로 간다면 아베 정권의 반동화 프로젝트는 완성될 것이다. 결국 전후 민주주의는 무덤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가토 슈이치의 ‘천황제를 논하다’는 20대인 1946년에 썼지만 간결하면서도 명쾌하다.

“천황제를 왜 그만두어야 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천황제는 전쟁의 원인이었고, 그만두지 않으면 다시 전쟁의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중략) 나는 결론짓는다. 천황제는 그만두어야 한다. 그것도 가능한 한 빨리 그만두어야만 한다. 나는 봉건주의의 암담한 황혼에, 인민과 이성과 평화가 찾아올 아침을 향해 소리친다. 무기여 천황제여 인민의 모든 적이여, 잘 가라!”

그는 개인과 천황제도는 구별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천황제이지, 천황이 아니다”라고 했다. 천황제가 전쟁의 원인이며 군국주의와 침략전쟁의 원인이라고 했다.

1968년 여름 발표한 ‘언어와 탱크’는 가토 슈이치가 남긴 글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글로 꼽힌다.

“언어는 아무리 날카로워도 또한 아무리 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되어도 한 대의 탱크조차 파괴하지 못한다. 탱크는 모든 목소리를 침묵하게 만들 수 있고 프라하 전체를 파괴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프라하 길거리에 있는 탱크의 존재, 그 자체를 스스로 정당화하는 일만은 불가능할 것이다. 자기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어떻든 언어가 필요하다. 언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가지고 해야만 한다. 1968년 여름, 보슬비에 젖은 프라하 거리에서 마주 서 있던 것은 압도적이지만 무력한 탱크와 무력하지만 압도적인 언어였다. 그 자리에서 승패가 정해질 리 없다.”
헌법으로 전쟁포기를 선언한 ‘9조 모임’을 이끌며 평생 평화운동에 헌신했던 가토 슈이치는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일본 지식인의 존경을 받았다.
일본 京都民報 제공

당시 프라하 거리에서 있던 그는 일본의 현실을 떠올리면서, 전쟁을 방관했던 일본의 지식인들을 떠올렸다고 회고했다. 가토가 가장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말 바꾸기에 의한 ‘시나브로’ 수법이다. 일본 사회에서 항상 정치권력과 결탁한 언론매체의 말바꾸기가 그것이다. 패전을 종전으로, 점령군을 진주군으로, 침략을 자위로, 정부 각료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개인 자격으로 뒤집는 일본정치의 말 바꾸기 수법은 끝이 없다. 최근 일본 정부가 징용공을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로 바꿔 부르는 등 고질적이다. 대법원이 일제 침략 기업들의 배상을 판결한 직후였다. 언어 조작은 일본 정치권력의 존재양식과 결합되어 있다고 가토는 비판한다.

그는 오에 겐자부로, 쓰루미 슌스케 등과 함께 2004년 평화헌법 9조를 지키는 ‘9조모임’을 만들었다. 전국 각지에서 강연회를 여는 등 2008년 생을 마칠 때까지 평화헌법 수호운동에 헌신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