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7시, 혁신도시는 '유령도시'가 된다 [밀착취재]

공기관 직원들 퇴근은 서울로… “해 지면 외출하기 겁나요” / 정주 여건 부실… 갈 길 먼 혁신도시
“해가 지면 무서워서 밖에 나가지 않습니다.”

3일 오후 충북 진천군과 음성군 경계에 자리한 충북혁신도시 내 공용터미널 사거리. 터미널 앞 6차로 도로는 혁신도시의 중심도로이지만 승용차와 공사 차량만이 가끔 지나갔다. 사람 구경은 움직이는 차량보다 더 보기 어려울 정도다. 터미널 안에는 오후 5시30분인데도 아저씨와 아주머니 10여명만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천읍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양승철(68)씨는 “오후 7시면 막차가 끊긴다”며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승용차를 이용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터미널을 이용하는 사람은 하루 500명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터미널 안 식당에도 2명씩 앉은 두 팀만 식사를 하고 있었다. 터미널 바로 옆 고층 오피스텔 빌딩 1층은 몇 개월째 입주하는 사람이 없어 비어있는 상태라고 주변 사람들이 전했다. 혁신도시 내에는 오피스텔과 상가 건물이 많이 지어졌지만 빈 상가들로 즐비했다. 충북혁신도시발전추진단 관계자는 “이 혁신도시는 원룸 등 단독주택을 지을 수 없도록 법이 정해져 높은 건물의 오피스텔이 많다”고 말했다.

충북혁신도시는 4만명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조성됐다. 지난 9월 말로 2만명이 입주했다. 매년 5000명씩 인구가 늘지만 도시 전체적으로는 썰렁하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혁신도시 내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이연신(31·여)씨는 “오피스텔에서 생활한다”며 “여름에는 해가 길어서 운동도 했지만 요즘은 밤이면 너무 조용하고 한적해서 밖에 나가기가 겁난다”고 말했다.

이전 기관들의 퇴근 시간인 오후 6시가 되자 거리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공터와 주차장에 있던 30여대의 대형 버스들이 한국가스안전공사 후문과 한국교육개발원 대로변에 줄을 서는 것을 시작으로 이전 기관을 차례로 돌며 직원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10여분 만에 10개 이전기관을 훑은 버스들은 서둘러 서울로 향했다. 이들 버스는 각 공공기관이 공동으로 자금을 투입해 무료로 운영 중이다.

앞서 지난달 28일 오후 강원 원주시 반곡동 혁신도시도 사정은 비슷했다. 오후 6시가 되자 대형 버스가 공공기관을 들러 직원들을 태우고 서울로 떠났다. 한국광물자원공사, 대한석탄공사, 한국관광공사 등 12개 공공기관 이전이 모두 마무리됐지만 빈 상가들이 많았다. 특히 몇몇 업소에는 ‘토요일은 영업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주민 이영신(45)씨는 “저녁에는 공공기관 직원들이 서울로 썰물처럼 빠져나가 도시가 황량하다”고 말했다.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 직원들의 현지 정착이 지지부진하다. 특히 수도권과 가까운 강원과 충북 등지에서는 직원 태반이 출퇴근하거나 ‘나 홀로’ 이주족이 많아 혁신도시 조기 정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각 지자체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현재 전국 10개 혁신도시 내 이전 기관 직원들의 가족동반 이주율은 평균 36.6%에 머물러 있다. 미혼 독신인 직원(24.9%)을 포함해도 이주율은 61.5% 수준이다.

충북과 강원 등 수도권과 가까운 혁신도시 이주율은 훨씬 낮다. 원주혁신도시의 가족동반 이주 직원은 27.1%에 불과했다. 미혼과 독신, 혼자 이주한 직원이 65.2%나 되지만 이들 대부분이 금요일이면 수도권으로 올라간다.

충북혁신도시는 현재까지 이전한 10개(계획 11개) 기관 직원 2798명 중 가족동반 이주자는 18.2%(510명)에 그쳤다. 42.1%(1178명)는 매일 회사가 마련해 준 셔틀버스로 출퇴근하고 있다. 나머지 19.5%(545명)는 혼자 내려와 외롭게 생활하는 이른바 ‘기러기’들이다.

그렇다고 공공기관 임직원들만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들이 매일 왕복 3시간 출퇴근이나 주말 부부로 사는 불편을 감내하는 것은 혁신도시의 정주여건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혁신도시의 생활환경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지만 교육·의료·문화 등 정주시설은 여전히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배후도시도 없이 면 단위 농촌에 둥지를 튼 충북혁신도시에는 아직 종합병원이 없다. 2022년 말에나 종합병원(소방복합치유센터)이 들어선다. 학교도 부족하다. 고등학교는 공공기관 이주가 시작된 지 4년 만인 지난해 달랑 1개교가 개교했다. KTX 오송역을 잇는 버스가 지난달에 생겼지만, 운행횟수가 단 2회에 불과해 교통에 별다른 도움이 안 되고 있다. 더구나 이곳은 진천군과 음성군 두 지역에 반반씩 걸쳐 도시가 조성된 탓에 ‘한 지붕 두 가족’이다.

진천군과 음성군은 각각 출장소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하나의 도시지만 행정구역이 둘로 나뉘면서 주민화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공립 어린이집과 보건소, 청소년 문화시설 등 공공시설을 어느 한쪽에 지으려면 “이곳에도 설치해 달라”는 민원에 애를 먹는다고 한다. 김진선(41·여)씨는 “우체국 위치가 행정구역상 음성 맹동면에 있다”며 “진천지역 주택에 사는 주민이 택배를 찾으러 10㎞ 떨어진 진천읍을 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양 군은 2014년부터 조례 개정을 통해 제증명 수수료(42종), 주민세(1만원), 쓰레기봉투(20L 340원), 상하수도요금, 시내버스 요금을 단일화했다. 하지만 100여 종의 제증명 수수료와 복지서비스 통합은 마치지 못했다. 진천은 민간 어린이집을 다니는 셋째 자녀에게 매월 3만∼5만원의 보육료를 지원한다. 음성에서는 이런 혜택이 없다. 출산 축하금 지급액도 다르다.

전문가들은 이전 기관 종사자들의 정착이 늦어지는 이유를 공공기관 이전과 도시 시스템 개발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지 않은 결과라고 진단한다.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 박명흠 공동의장(전 부산외국어대 법학교수)은 “가족을 유인하는 교육과 문화 시설이 필요하다”며 “택지를 만들어 일괄적으로 분양하고 끝내버리는 식으로 혁신도시를 개발하다 보니 애초부터 도시별 특색도 없고 사후관리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자유한국당 김기선 의원(강원 원주갑)은 “최근 혁신도시발전추진단이 이전 공공기관의 지역정착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도록 하는 내용의 ‘혁신도시 조성 및 발전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면서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대부분 완료돼 앞으로는 지역산업과 연계한 이전 공공기관의 장기적 성장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천·음성=김을지 기자 ejk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