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12-05 07:00:00
기사수정 2018-12-04 18:03:14
[이슈톡톡] 도봉구 유치원 학부모 인터뷰
정부가 사립유치원 사태에 강경대응 방침을 밝힌 가운데 동시 폐원을 예고한 서울 도봉구 사립유치원의 수는 최근 3곳에서 4곳으로 오히려 더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세계일보는 지난 11월15일 서울 도봉구에서 6세 자녀를 키우고 있는 학부모 A(39)씨와의 인터뷰를 전한 바 있다. A씨 자녀가 다니고 있는 B유치원을 포함해 서울 도봉구 유치원 3곳이 동시 폐원을 예고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후 정부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과 대립각을 세우며 ‘사립유치원 집단폐원 입장에 대한 범정부 대응방침’을 발표하고, 여당이 ‘유치원 3법’ 개정안 통과를 강력 추진하는 등 사태 해결에 열성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일부 학부모는 시간이 흐를수록 해결은커녕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사 나간 후 원장 불쾌해 해... 폐원 예고 유치원 더 늘어나”
A씨는 4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기사가 나간 직후) 원장이 부모들에게 불쾌해하더라. 자기의 권위 그런 거에 (학부모들이) 도전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지금까지도 계속 폐원을 주장하고 있다. 당시 3곳만 동시 폐원을 예고했는데 이제 4곳이 됐다. 학부모들이 무척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그는 또 “한유총 측에서 이번 주말까지 (유치원들이) 원아 모집을 시작하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저희 쪽은 아직 신입 모집 얘기가 전혀 없다”며 “4곳이 폐원한다고 했는데 서로 간을 보는 건지 시기나 그런 게 말이 계속 바뀐다. 제 생각인데 한곳이 퇴원하면 그 원아들을 자기가 다 받으려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고 추측했다.
◆“교육당국 무성의... 자기 자식들 유치원 다녔어도 그럴까”
A씨는 교육당국이 사태 해결에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학부모들이 계속 항의를 하고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교육청에 요구한다. 그런데 교육청에선 다 ‘남의 얘기’처럼 반응한다. 만약 자기 자식들이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면 그랬을까”라며 “늘 찾아가면 ‘담당자 부재중’이고 ‘결정된 게 없다’ ‘검토하고 있다’ 원론적인 답변만 늘어놓는다. 벌써 사태가 시작된 지 몇 달짼데 힘이 빠진다”고 허탈해했다.
그는 관계 기관 간 불협화음도 사태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A씨는 “학부모들이 연대해서 교육청 이런 쪽에 얘기했다. ‘동시 폐원한다고 하니 다른 유치원에 아이들을 수용해달라’ ‘근처 유치원이 죄다 폐원하니 갈 데가 없다’”라며 “서울북부교육청에선 C유치원이라고 재정이 열악한 곳이 있는데 이쪽으로 아이들을 통째로 이동시키자는 의견이 나왔다. 애들도 친구들이랑 안 떨어지니 괜찮겠다 싶었다. 그런데 또 서울시교육청에서 좀 안 된다는 식으로 해서 조율 중이라고 말을 바꾸더라. 왜 교육기관들끼리 서로 합의가 안 되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아이 볼모로 정부와 한유총 ‘힘겨루기’... 우리만 ‘새우등’ 터져”
A씨는 “정부가 말하는 회계시스템 ‘에듀파인’ 다 맞는 얘기다. 하면 당연히 좋다. 하지만 모든 정책을 실행할 땐 예상되는 반발이라든가 대안이 있어야 한다”며 “‘이게 정의니까 이게 맞다. 이게 맞으니 하자’는 건 무책임하다. 사실 한유총이 갑의 입장 아닌가? 정부와 한유총이 힘겨루기하며 싸우는데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결국 우리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거다. 아이들이 볼모로 잡혀서”라고 분노했다.
그는 또 “나도 애가 1살이거나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으면 분명 지지했을 거다. 그런데 정부가 대안을 먼저 만들어놓고 해야 했는데 지금 너무 부작용이 크다. 시기상조가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애라도 없으면 시원하게 욕이라도 할 텐데... 참을 수밖에”
A씨는 “실제로 언론에 이번 사안이 기사로 나가고 나서 유치원에서 통신문이 왔다. ‘자기(원장)가 몸이 굉장히 안 좋고 왜곡된 보도 때문에 힘들다. 애들이 졸업할 수 있게끔만 분위기 조성해달라’는 내용이었다”며 “이게 마치 ‘내가 니네 애들 가르치고 있다. 이러면 정상적으로 못 가르쳐’ 약간 협박처럼 느껴지더라”고 털어놨다.
그는 또 “‘기자들이 와서 수업에 방해가 된다’는 내용도 있는데 사실 외부인은 그 유치원에 들어갈 수 없다. (유치원 측이) 과장을 하고 있다”며 “학부모들이 간담회 요청하면 ‘몸 아파서 못 하겠다’ 이런 얘기만 한다”고 답답해 했다.
A씨는 이어 “애라도 없으면 ‘교육자로서 어떻게 이럴 수 있냐’ 욕이라도 시원하게 할텐데... 다른 유치원에 보낼 수도 없고 참을 수밖에 없다”며 “학부모가 기댈 곳이 국가기관밖에 없는데 자꾸 확정된 게 없다고만 하니 화가 난다”고 비판했다.
세계일보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해당 유치원에 전화해 원장과의 통화를 시도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풀리지 않는 사립유치원 사태... ‘유치원 3법’ 연내 통과도 불투명
교육부는 3일 오후 5시 30분 기준 전국 94개 사립유치원이 폐원신청서를 내거나 학부모에게 폐원 안내를 하고, 2곳은 원아 모집 중단을 안내했다고 4일 밝혔다. 일주일 전인 11월 26일과 비교하면 문 닫는 것을 검토하는 유치원은 9곳 늘었다.
앞서 한유총은 3일 ‘사립유치원 정상화를 위한 협상단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협상을 요구했다. 한유총은 협상의제로 △사립유치원 교육과정 편성 운영 자율권 확보 △공공성과 안정성이 확보된 사립유치원 모델 정립 △사립유치원 특수성을 고려한 시설사용료 인정 △합리적인 '출구방안' 마련 등을 제시했다.
여야는 ‘유치원 3법’ 개정안 통과를 두고 대립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사립유치원 자금을 국가관리로 일원화하자는 입장이고 자유한국당은 국가지원회계와 일반회계로 이원화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여야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어 연내 통과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