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 위 다이아몬드… 더 기울어진 운동장 [S스토리]

방송사 “발굴·데뷔과정 알려준다” / 결국 뚜껑 열면 소속 연습생 홍보 / 방송국·대형기획사 합작사 설립도 중소기획사 소속 ‘통상의 아이돌’은 방송사가 데뷔시킨 ‘금수저 아이돌’에 이어 이제는 대형기획사와 방송사가 손잡고 함께 밀어주는 ‘다이아몬드수저 아이돌’과도 불합리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엠넷은 지난 8월 2일부터 10월 4일까지 ‘GOT YA! 공원소녀’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걸그룹 ‘공원소녀’ 멤버들에게 미션이 주어지고, 스튜디오에서 4인의 MC가 이들의 행동을 예측하는 내용이다. 당시 공원소녀는 데뷔를 하지 않은 그룹으로, 방송사가 그들의 이름을 내건 프로그램을 내보냈다는 점에서 특혜 편파 논란이 있었다.

공원소녀는 첫 방송에 얼굴을 내민 지 한 달 뒤인 지난 9월 5일 데뷔했다. 작곡가 김형석이 회장으로 있는 키위미디어그룹 소속이다.

엠넷은 지난 11월 28일부터 매주 수요일 리얼리티 프로그램 ‘인싸채널 체리블렛’을 방영하고 있다. FNC엔터테인먼트에서 준비 중인 걸그룹 ‘체리블렛’의 일상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체리블렛 또한 공원소녀와 같이 아직 데뷔하지도 않았는데,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됐다.

한 달에 수십개의 아이돌 그룹이 탄생하고 사라지는 가운데 아직 데뷔도 안 한 걸그룹이 단독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몹시 이례적이다. 방송사가 대형기획사와 손을 잡지 않은 이상 불가능하다. 이는 결국 기울어진 운동장의 낮은 쪽에서 공을 차던 선수(통상의 아이돌)들이 이제는 자신들보다 두 배 많은 상대를 이겨야 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JTBC2는 YG엔터테인먼트와 손을 잡고 ‘YG 보석함’을 선보이고 있다. 카메라는 YG 소속 연습생 29명 중 5명을 선발해 보이그룹을 만드는 과정을 따라간다. 총 10화로, JTBC2와 브이라이브, 유튜브를 통해 방영 중이다. 길거리 캐스팅부터 연습생 발굴 기준, 트레이닝 과정 등을 최초로 공개한다는 취지지만, 결국 YG 연습생을 홍보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내년 1월 방영 예정인 엠넷 ‘슈퍼 인턴’도 비슷하다. 프로그램은 JYP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할 정규직 사원을 뽑는 과정을 그린다. 하지만 ‘슈퍼 인턴’도 JYP 소속 아이돌이나 연습생을 홍보하는 구실을 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지원자들의 업무 능력을 평가한다는 이유로 JYP 소속 아이돌이나 연습생과의 협업을 미션으로 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방송사는 이제 대형기획사와 합작 기획사를 차리는 수순까지 이르렀다. CJ ENM은 지난 8월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이 소속된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합작 회사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콘텐츠 산업의 공룡인 두 기업이 힘을 합쳐 ‘글로벌 K팝 아티스트’를 발굴한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아이돌의 흥행 가능성을 떠나서 CJ ENM이 자사의 방송을 통해 홍보할 게 뻔해 기울어진 운동장이 더 기울어지게 됐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아이돌 가수 지망생들에게도 합작 회사가 관심사 1순위로 뛰어올랐다. 한 아이돌 지망생은 “빅히트와 CJ ENM이 합작 회사를 만들면 무조건 지원을 할 생각”이라며 “중소기획사에 들어가 몇년간 고생해도 성공을 보장할 수 없으니, 어렵더라도 대형기획사를 찾아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망생은 “어차피 모든 이슈는 빅히트·CJ ENM이 가져갈 텐데, 그곳 소속이 안 되면 포기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이복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