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의세상보기] 대통령 지지율과 정치 역량의 함수관계

경제악화 실망 ‘이영자’ 등 돌려/文대통령 지지율 하락 연일 입방아/공과 평가는 오롯이 역사의 몫/숫자 연연 말고 ‘좋은 정책’ 펴야

대통령이 재임기간 중 누리는 인기와 대통령으로서 훌륭한 역량을 발휘했는지 여부 사이엔 미묘한 역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룬 역사학자의 책을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책 내용 중에는 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직전 불명예 퇴진을 했던 리처드 M 닉슨 대통령을 비교했던 대목이 가장 흥미진진했다. 1960년 미국에서는 역사상 처음 도입된 TV토론을 거쳐 젊고 매력적인 외모를 갖춘 데다 화려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대중 친화적 이미지를 자랑하는 케네디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당시 당선이 유력시되던 닉슨은 TV토론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했던 나머지 케네디에게 근소한 차이로 예상외의 뼈아픈 패배를 당했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미국 국민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외모의 신임 대통령은 물론이요 그의 아름다운 아내와 사랑스러운 아들딸 모두를 아끼고 사랑했다. 케네디 대통령 일가는 유명 연예인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의 정치적 역량을 평가하는 데 참여한 전문가들은 케네디의 대통령직 수행능력을 평가하는 데는 인색한 점수를 부여했다. 케네디 대통령 시절 미국은 소련이 미국 코앞에 있는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려는 과정에서 불거진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경험한 바 있고, 미소 냉전시대 양국 간 대결이 펼쳐지는 외교무대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참사의 주인공으로 탄핵 직전 불명예 퇴진을 하긴 했지만, 그의 재임기간 중 대통령직 수행과 관련해서는 역사적으로 괄목할 만한 공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을 대동하고 탁월한 외교력을 발휘함으로써 중국과의 핑퐁외교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간 동시에 동서 화해무드 조성에도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 결과, 훗날 소비에트연방을 위시한 동구 사회주의권 붕괴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늘 불만 가득한 얼굴에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듯했던 닉슨은 재임기간 중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마음 또한 얻지 못했다. 그는 퇴임을 앞두고 측근들에게 “국민이 나를 싫어했듯이 나 또한 국민이 싫었다”는 고백을 했다고 전해진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 지지도와 관련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취임 초기 70~80%에 육박하던 지지도가 이제 50%에도 못 미친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대통령 지지를 철회하는 층으로 20대, 영남권, 자영업자를 조합해서 만든 ‘이영자’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지지도 하락의 주원인으로는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는 실업률,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저성장의 늪에 빠진 경제상황이 지목되는 가운데 남남갈등을 유발하는 한·미동맹과 남북관계, 더불어 여권 내부의 갈등이 중요한 비중으로 다뤄졌다.

 

이 대목에서 1979년 출간돼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린 미국의 사회비평가 크리스토퍼 래시의 역작 ‘나르시시즘의 문화’에 등장했던 탁월한 분석이 떠오른다. 나르시시즘 문화가 팽배하게 되면 정치가의 실체나 실질적 역량보다는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이미지가 보다 중요해지는 ‘이미지정치’가 기승을 부리게 된다. 이에 따라 정치가는 정치력을 근거로 평가받는 스테이츠맨(statesmen) 지위를 버리고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celebrity)으로 변신하게 된다는 것이다. 래시의 혜안이 오늘 우리네 정치상황을 향해서도 의미심장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음이 분명한 듯하다.

 

대통령의 지지도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지표임은 분명하다. 고공행진을 지속하던 대통령 지지도가 꾸준히 하강 추세를 보이고 있다면 이건 엄혹한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51% 지지도와 49% 지지도를 놓고 일희일비(一喜一悲)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국민이 ‘좋아하는 정책’과 ‘좋은 정책’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닌 만큼 인기나 지지도에 연연해하기보다는 ‘좋은 정책’을 만들어내고 이를 뚝심 있게 실현해 갈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이 보다 절실히 필요하리란 생각이다.

 

물론 ‘좋은 정책’이 무엇인가를 놓고 100%가 공감하는 정의를 내리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정책 입안과정에서부터 정확하고 합리적인 현실진단을 토대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시각에서 다양하고 폭넓은 의견 수렴과정을 거친다면, 정책이 의도했던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음은 물론이요 국민을 향해서도 충분한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더더욱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는 단기적으로는 선거의 승패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오롯이 역사의 몫임을 기억할 일이다. 역사 발전에 큰 공헌을 남긴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공적과 과오가 공존할 것임이 분명하다. 대통령을 향한 평가가 내 편 네 편 가르기에 따라 100% 옳거나 100% 틀렸다는 식의 양극단으로 치우치고 있음은 모두에게 심히 불행한 일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가리키는 숫자의 크고 작음보다는 숫자에 담긴 질적 의미에 귀 기울이되 역사 속에서 어떻게 기록되고 기억될 것인지 예단해 볼 수 있는 지혜와 통찰을 기대해 본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