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컴퓨터에 있던 폰트 사용…저작권 침해? [알아야 보이는 법(法)]

#디자인 업체에 근무하는 A씨는 각종 폰트(서체) 프로그램이 저장된 중고 컴퓨터를 구입했다. 그 후 A씨는 한 업체로부터 이미지 컨설팅을 의뢰받아 벽화와 메뉴판, 간판 등에 대한 디자인 작업을 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본인이 구입한 중고 컴퓨터에 있던 폰트 프로그램을 사용했는데, 알고 보니 이 프로그램은 다른 디자인 업체 B사가 등록한 저작물이었다. 이에 B사는 A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 A씨의 행위는 B사 저작권을 침해한 것일까?

 

윤태호 작가가 무료 배포한 손글씨 ‘미생체’.

결론부터 말하자면 A씨의 행위는 저작권 위반에 해당합니다. 저작권법상 보호 대상이 되는 폰트 프로그램을 쓴 탓인데요. 저작물성을 판단하기에 앞서 폰트와 폰트 프로그램에 대한 구분이 선행돼야 합니다. 폰트 프로그램이란 특정 폰트를 설치하는 프로그램을 이릅니다. 폰트를 내려받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것이죠.

 

소위 서체나 글꼴에 대한 저작권은 폰트 프로그램을 가리키는 것으로, 미술 저작물이 아닌 프로그램 저작물로 분류됩니다. 따라서 폰트 프로그램을 복제, 전송, 배포하는 행위는 저작권 침해에 해당합니다. 다만 이를 이용해 표현된 결과물인 폰트만 활용하는 행위는 그 폰트 자체가 예외적으로 저작물에 해당하지 않는 한 저작권 침해행위가 아닙니다(서울중앙지법 2017. 12. 15. 선고 2017나29582 판결 참조).

 

폰트 프로그램을 어떤 목적으로 이용했는지도 저작권 침해성을 판단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비영리 목적으로 사용했다면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지만, 상업적으로 썼다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저작권을 침해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저작권법 136조).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판시하며 A씨가 B사에 50만원의 손해배상액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A씨는 디자인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서체 프로그램이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될 수 있고 이로 인해 저작권 침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는데도 침해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중고 컴퓨터에 저장된 서체 프로그램을 사용해 B사의 저작권을 침해했다. 서체 프로그램을 취득하게 된 경위나 저작권 침해 행위의 내용과 기간, 그로 인해 A씨가 얻은 경제적 이익의 규모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할 때 손해액은 50만원으로 정한다."(전주지방법원 2017. 4. 28. 선고 2016가소31684 판결)

 

A씨는 별도의 폰트 프로그램을 구입하지 않고,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폰트 프로그램을 상업적으로 활용해 수익을 올렸습니다. 따라서 재판부는 A씨의 행위가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며, 손해배상액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입니다.

 

최근 한글서체 개발업체들이 학교나 공공기관, 민간 어린이집 등을 대상으로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경고장을 무더기로 보내고 합의금을 요구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작권이 있는 서체를 활용할 때는 상업용 무료 폰트를 활용하거나 그 용도에 맞게 서체를 구입해 이용하길 바랍니다.

 

 

오성환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sunghwan.oh@barunla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