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12-16 19:16:39
기사수정 2018-12-17 12:11:24
형식적 규제에 대응 속수무책 / 시민사회 “본인인증 의무화” 목소리 / 여가부·과기부·방심위 서로 네 탓만 / ‘스킨십 한 번에 15만원’ 올린 이용자 / 방심위 “증거 불충분” 해당없음 조치 / 채팅앱 개발업체 IT·벤처기업 분류 / 정부 보조금 타 몸집 불리기 의혹도
“채팅앱 성매매로 부산에 에이즈가 퍼졌습니다.”(2017년 국정감사 김정재 자유한국당 의원)
“청소년 성매매 67%가 채팅앱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2018년 국정감사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가 범람하는 채팅앱에 대한 규제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수년간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뒷짐’만 진 상태다. “최소한 본인인증 절차라도 두게 하라”는 시민사회 목소리에 “정보기술(IT) 산업은 규제할 게 아니라 장려해야 한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일부 채팅앱에 정부 보조금이 지원됐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사실상 정부가 성매매를 조장한 격’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서로 ‘네 탓’ 떠미는 유관 부처들
16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2012년 본격적으로 등장한 채팅앱이 그동안 숱한 지적에도 이렇다 할 제재를 받지 않은 것은 부처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결과다. ‘칼을 잘못 쓴 사람을 탓해야지 칼을 판 사람을 탓할 수 없다’는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 이 문제를 주도할 주체가 모호해 부처 간 ‘떠밀기’가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우선 여성가족부는 채팅앱 본인인증 의무화 등을 위해서는 산업·기술적인 규제가 필요한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이 나서지 않고 있다고 불만이다. 반면 과기정통부 등에서는 성매매나 음란물 규제는 여가부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할 일이라고 보고 있다. 방심위는 통신비밀보호법 등으로 사적 대화까지 규제하긴 현실적으로 어렵고, 청소년 성보호 문제는 여가부 업무라는 입장이다.
취재팀이 송옥주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부처 간 채팅앱 회의 및 협의 자료’를 보면 채팅앱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해 2016년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10여개 관계부처가 실무회의 2번을 포함해 7번이나 모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4월에는 국무조정실 주재로 미래창조과학부, 여성가족부, 경찰청, 방송통신위 4개 부처 실무진이 만났으나 시각차만 확인했다고 한다.
당시 방심위는 여가부 측에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조항 중 ‘청소년에게 불건전한 교제를 조장할 우려가 있거나 이를 매개하는 것’이란 문구를 ‘청소년에게 불건전한 교제를 조장하거나 매개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바꾸기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소 단정적인 ‘매개하는 것’이란 조항만으론 규제가 어렵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여가부 측에서 ‘사실상 같은 것 아니냐’며 실효성에 의문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가부 한 관계자는 “당시 방심위에 ‘그럼 해당 조항을 바꾸면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 관련) 심의를 해줄 것이냐’고 물었으나 별다른 대답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의미 없는 ‘솜방망이 제재’뿐
채팅앱 관련 규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방심위는 시민 신고 자료를 토대로 성매매 시도 등이 확인되면 업체 측에 사용자 이용 해지·정지 등을 요청하고 있다. 방심위의 채팅앱 시정조치 건수는 2015년 148건에서 2016년 2522건으로 크게 늘었고 지난해와 올해 각각 894건, 2219건을 기록했다. 수치만 놓고 봤을 땐 정부가 적극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있으나 마나’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채탱앱만 100여개가 있는 상황에서 이용자로서는 다른 채팅앱으로 바꿔 쓰면 그만인데 이용 해지·정지를 해봤자 무슨 효력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마저도 제대로 조치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취재팀이 방심위 심의자료 30여건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위원회는 노골적으로 청소년 성매매를 암시한 사용자 중 상당수에 ‘해당 없음’ ‘각하’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스킨십 1번에 15(만원). 교복 입고 오면 +알파’라고 쓴 이용자에 대해 방심위는 ‘위법을 판단하기 위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해당 없음’ 조치를 내렸다. ‘1번에 20(만원) 차나 모텔에서 보실 분’이라는 대화에 대해서는 ‘심의에 필요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각하’ 처분했다.
방심위 관계자는 “성행위 내용과 금액, 연락처가 모두 확인돼야 불법으로 판단할 수 있다”며 “축약어나 부호 등을 써 성매매를 하려는 것인지 애매한 경우도 많다”고 해명했다.
◆채팅앱, 정부 보조금까지 들어갔나
일각에서는 IT·벤처기업으로 분류되는 채팅앱 개발사들이 정부 보조금 등을 지원받아 몸집을 불렸다는 정황도 있다. 취재팀이 이훈 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각 부처 자료를 분석한 결과, 5개의 채팅앱을 운영한 A업체는 창업기업지원자금 등 명목으로 지난달 정부기관 2곳으로부터 대출금 3억9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업체가 운영한 S채팅앱에서도 성매매 제안이 넘쳐났다. 이 채팅앱에 여성 청소년으로 접속하자 이틀 만에 남성 30여명한테서 성매매 제안과 음란 메시지가 날아왔다. 일부는 현장에 직접 나왔다. A사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S채팅앱을 매입해 운영하다 적자로 인해 지난달 매각했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A사가 대출금 지원을 신청한 기술은 광고 관련”이라며 “그밖에 채팅앱을 운영하는지, 혹은 이후 개발했는지 등을 확인할 여력까지는 없다”고 했다. A사 외에 다른 채팅앱들이 정부 보조금을 받았다는 업계 증언을 확보하고 이를 확인하려 했으나 구글 앱스토어 등에 오른 사업자 정보 대부분이 엉터리라서 확인이 불가능했다. 정부도 구글 정책 등으로 인해 채팅앱 사업자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전해졌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채팅앱이 IT 기업이라는 이유로 보조금을 받았다는 건 업계에선 오래된 소문”이라며 “이들 사업자를 규제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국가 세금이 들어가는 건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꼬집었다.
사회부=박현준·남정훈·권구성·이창수·김주영·김청윤 기자
bueno@segye.com
영상팀=서재민·이우주 기자
<십대여성인권센터, 공공의창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