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12-17 21:05:19
기사수정 2018-12-17 21:38:35
스즈키컵 10년 만에 우승 이끌어/포상금 이어 우승 메달까지 기증/스포츠 외교 선봉장 역할 ‘톡톡’/아시안컵서 매직 이어질지 주목
처음 만난 사람도 ‘무장해제’ 시키는 힘. 박항서(59)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에겐 이런 순수한 매력이 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한창이던 지난 8월, 그는 한국 교민이나 취재진을 보면 아이처럼 반가워했다. 먼 타국의 ‘영웅’이 됐으니 뻣뻣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편견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전히 동네 주민 같은 인간미로 주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지난 15일 베트남에 10년 만의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우승을 안긴 박 감독의 미담이 이어지고 있다. 17일 베트남 매체 ‘띠엔퐁’에 따르면 박 감독은 우승 기념행사에서 쩐꾸옥뚜안 베트남축구협회(VFF) 부회장에게 우승 메달을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박 감독은 인센티브 격인 우승축하금 10만달러(약 1억1000만원)를 받고도 “베트남 축구 발전과 빈곤층을 위해 써 달라”고 기부 의사를 밝혀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베트남의 화가 쩐테빈이 그린 박 감독의 초상화 ‘나의 스승’은 오는 30일 개최되는 ‘헬레오 2019’ 자선경매에 출품될 예정이다. 시작가는 무려 5000달러(약 565만원)로 박 감독의 높은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베트남의 화가 쩐테빈이 그린 박항서 감독의 초상화 ‘나의 스승’. 이 그림은 시작가 5000달러(약 565만원)에 경매에 오를 예정이다. VTV1 캡처 |
이처럼 베트남을 동남아시아 축구 맹주에 올려놓은 데다 남다른 배려까지 돋보여 ‘쌀딩크’ 신드롬은 지속될 공산이 크다. 그의 연봉도 크게 오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박 감독을 직접 영입한 도안 응우옌 득 전 베트남축구연맹 재정담당 부회장은 “박 감독의 현재 월급은 2만2000달러(약 2492만원)다. 2020년 초 계약 기간이 끝나면 연봉 인상을 포함한 모든 것을 고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인기는 뜬구름이다. 잘하다가 한 번의 부진에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하루살이’ 지도자의 처지임을 박 감독 역시 잘 알고 있다. ‘박항서 매직’의 다음 시험대는 내년 1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개막하는 아시안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이다. 박 감독은 “스즈키컵 우승의 기쁨을 누릴 시간도 없다. 당장 아시안컵을 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베트남 축구가 아시아 축구의 중심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이니만큼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뜻이다.
일단 베트남의 대진은 만만치 않다. 이란, 이라크, 예멘과 조별리그에서 경쟁해 거센 ‘중동 바람’을 뚫어야 할 판이다. FIFA 랭킹 아시아 최고인 29위 이란의 조 1위가 확실시되고 베트남은 이라크와 조 2위를 놓고 각축전을 벌일 전망이다. 박 감독은 “스즈키컵을 통해 3-4-3 포메이션의 장단점이 노출됐다. 선수들의 개성과 특징을 최대한 살리는 게 변화의 핵심이 될 것”이라며 결의를 다졌다.
안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