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정권에 "이게 나라냐" 했다 옥살이… 형사보상 결정

김태룡 前 신민당 의원,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죄로 징역 1년6개월 실형 / 최근 재심에서 40년 만에 무죄 확정… 법원, 1억2600만원 형사보상 결정
제12대 국회(1985∼1988)에서 제1야당이던 신민당 국회의원을 지낸 김태룡(84·사진) 대한민국 헌정회 고문이 유신정권 시절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된 사건의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데 이어 국가로부터 1억2000여만원의 보상금도 지급받게 됐다. 헌정회는 전직 국회의원들의 모임이다.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박형준)는 지난 5월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김 고문에게 형사보상금 1억2618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의 형사보상 결정이 최근 확정됐다고 19일 밝혔다.

김 고문은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독재가 극에 달했던 1977년 제1야당인 신민당의 야당성회복투쟁위원회 공동의장 겸 대변인을 맡아 반정부 투쟁의 선봉에 섰다.

그는 1977년 11월15일 서울 중구 을지로의 한 예식장에서 열린 한 시국행사에 참석해 청중 350여명을 상대로 격려사를 했다.

김 고문은 먼저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유신체제요, 야당의 정치활동을 봉쇄하는 것이 유신체제요, 한 사람의 장기집권을 보장하는 것이 유신체제”라는 말로 유신헌법 폐지를 촉구했다.

이어 그는 유신정권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던 대통령 긴급조치를 겨냥해 “헌법 개정 말 한 마디만 하면 (징역형을) 5년, 10년 막 때려, 대통령의 말 한 마디가 법이요, 예산이요, 철칙”이라고 비난했다. 박 대통령을 향해선 “대통령이 말 한 마디 하면 법이 고쳐지고, 국회가 해산되고 국회에서 심리를 한 예산이 마음대로 집행되고 이게 민주국가냐”고 일갈했다.

유신헌법 개정 요구를 금지하는 내용의 대통령 긴급조치 선포 소속을 알린 동아일보 1974년 1월9일자 1면.
유신정권의 대통령 긴급조치 9호는 유신헌법 개정을 요구하거나 대통령을 비방하는 행위,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행위 등을 징역형으로 엄히 처벌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이 발언 내용이 알려지고 김 고문은 수사기관에 끌려가 조사를 받은 뒤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죄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형사지법(현 서울중앙지법)은 이듬해인 1978년 2월 1심에서 김 고문에게 징역 2년 실형에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 같은 해 6월 서울고법은 항소심에서 김 고문의 형량을 징역 1년6개월 실형에 자격정지 1년6개월로 다소 깎았다. 김 고문은 항소심 형량에도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기각됨으로써 이 형량이 그대로 확정됐다.

복역을 마치고 나온 김 고문은 유신정권 마지막 해인 1979년 또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구속됐으나 10·26 이후 법원의 면소 판결로 풀려났다. 이후 정계에 투신한 그는 1985년 신민당 소속으로 12대 국회의원(대전 중구)에 당선됐고 대변인을 지냈다. 신민당이 김영삼(YS)·김대중(DJ) 두 총재 중심의 통일민주당으로 개편된 뒤 민주당 대변인도 역임했다.

김 고문은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7월 과거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사건에 대한 재심을 법원에 청구했다. 서울고법은 이를 받아들여 올해 5월 김 고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유죄 확정 후 꼭 40년 만에 명예를 회복한 셈이다.

법원은 김 고문이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1년6개월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점을 감안해 형사보상금 액수를 1억2600여만원으로 산정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