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12-24 20:04:23
기사수정 2018-12-24 23:11:49
파주~강남 A노선 1.7㎞마다 환기구 / 도심 대기질 악화 불보듯 뻔한데 / 16년 전 미세먼지 보고서만 인용 / 초미세먼지 빠져 사실상 ‘시늉만’ / 환경평가 끝나기도 전 착공 방침 / 환경부·국토부 ‘밀실 짬짜미’ 우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사업의 환경영향평가가 들러리 신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종로와 강남 등 도심에 2㎞마다 환기구를 만들어 도심 미세먼지를 가중시킬 수 있는 사업이지만 국토교통부가 착공을 서두르면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식 평가가 우려된다.
24일 정부와 시민단체에 따르면 GTX-A가 환경영향평가 기한(다음달 18일) 이전 착공될 전망이다. 국토부는 “착공일은 미정”이란 입장이지만 김현미 장관이 줄곧 연내 착공을 강조한 데다 지난 19일 3기 신도시 계획 발표 때도 이번달 착공 방침을 분명히 한 만큼 조만간 공사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GTX는 수도권 교통난을 해소하고 경기·인천 주요 거점과 서울을 30분대에 연결하고자 추진하는 사업이다. 이 가운데 A노선은 경기 파주시와 서울 강남구에 이르는 42㎞ 구간을 지하로 연결한다. 북한산국립공원 밑을 관통하는 데다 곳곳에 환기구를 설치해야 해서 민감한 환경문제를 안고 있다.
환경부는 GTX-A 사업에 대해 전략환경영향평가와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했다. 환경영향평가 초안 검토보고서를 보면 총연장 42㎞ 노선에 환기구는 24개가 설치된다. 노선이 지나는 일산, 은평구는 물론 종로, 강남 등에도 터널 미세먼지를 외부로 뽑아올리는 환기구가 1.7㎞마다 1개씩 놓이게 된다.
그런데도 사업자 측은 미세먼지(PM10) 자료만 인용해 환기구 배출로 인한 대기질 영향 예측을 실시했다. 초미세먼지(PM2.5) 등 나머지 대기오염물질은 예측과 저감방안이 모두 누락된 것이다. 더구나 보고서에 활용된 PM10 발생량은 16년 전의 자료여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최근 환경영향평가 전문가 자문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지하철과 달리 GTX는 역과 역 사이가 멀어 역세권 혜택을 누리지 못하면서 환기구 미세먼지를 마셔야 하는 지역이 많다”며 “주민설명회도 열고 대안을 마련하라고 꾸준히 지적했지만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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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단체 “밀실 환경평가 규탄” 24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한국환경회의와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회원들이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졸속 착공, 환경영향평가 밀실 추진 등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국립공원 중에서도 특별히 보존 가치가 높은 공원자연보존지구와 공원자연환경지구를 통과한다는 점도 문제다. 자연공원법상 이런 지구는 도저히 대안이 없다고 인정될 때에만 관통하는 사업을 할 수 있다.
이 밖에 차량인근기지 멸종위기종 서식지 문제, 지하 굴착에 따른 안전성 문제 등이 지적됐지만 지난달 26일 환경부에 전달된 환경평가서 본안에는 뚜렷한 대안이 제시되지 않았다.
만일 환경영향평가 없이 GTX 공사가 시작되면 해당 사업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두 부처가 정면으로 맞서는 이런 상황보다는 환경부가 조건부 동의를 하고 사후 환경영향조사로 보완할 가능성에 무게가 쏠린다. 결국 환경영향평가는 졸속으로 마무리될 공산이 크다. 국토부가 3기 신도시 계획을 발표하며 조기 착공을 약속한 GTX-B와 C노선도 마찬가지다.
한국환경회의와 경실련 도시개혁센터는 이날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토부와 환경부는 4대강 사업에서도 들러리 환경영향평가로 엄청난 국민적 질타를 받았음에도 또다시 환경영향평가를 무력화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